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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기자님의 기사 | 총기사 (전체 2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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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대숭복사 비문으로 밝혀진 숭복사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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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숭복사지 주변에는 탑재들과 귀부와 비편, 건물의 초석 등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1929년 후지시마 가이지로(藤島 亥治郎)가 서쪽 돌계단 아래서 ‘국사대웅(國寺大雄) 개와대웅(蓋瓦大雄)’이라고 씌여진 평기와를 발견하였다. ‘국사(國寺)’라고 하는 것은 사격이.. [
12/1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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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대숭복사 비문으로 밝혀진 숭복사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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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복사지는 원성왕릉에서 남쪽으로 2.4km에 위치하고 있는데, 토함산 정상에서는 남쪽 방향이고, 토함산 산줄기인 조양산에서는 서쪽 방향이다. 숭복사지에서 동쪽으로 2km 위치에 감산사지가 있고, 활성리석불입상과는 1.3km 떨어져 있다.
숭복사지를 찾아갈 때는 반드시 원성왕릉을 거.. [
12/0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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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불로 추정되는 활성리 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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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야가 흐릿하여 책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시력 검사를 제대로 받은 후 처방을 받아 안경을 새로 맞추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안과를 찾았다. 증세를 이야기하니 이런저런 검사를 한다. 백내장이 상당히 진행되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량’이라는 속담처럼 우.. [
11/1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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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성이 부모 등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한 감산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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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사의 주인 격인 미륵보살입상과 아미타불입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는 현재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삼층석탑만 외로이 감산사를 지키고 있다. ‘못난 소나무가 선산(先山)을 지킨다’는 속담이 생각나게 한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현재 감산사의 주전인 비로전에 .. [
11/0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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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성이 부모 등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한 감산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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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사 미륵보살입상과 아미타불입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3층 조각공예관 불교조각실 정중앙에 있다. 일제강점기 제자리를 떠난 후 아직 고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는 본래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본연의 의미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문화.. [
10/2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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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성이 부모 등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한 감산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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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주 일대의 유적 조사를 담당하던 일본인 와타나베 아키라(渡邊彰)와 스에마쓰 구마히코(末松熊彦)가 이곳 감산사터 논바닥에서 석조미륵보살상과 아미타여래상을 발견하였다. 이 불보살상의 광배 뒤에 새겨진 조상기(造像記)를 판독하면서 이곳이 『삼국유사』 「탑상」편 ‘남월산’조의 감.. [
10/0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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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성이 부모 등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한 감산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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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탑상」편에는 ‘남월산을 감산사라고도 한다[南月山亦名甘山寺]’고 하였다. 절의 위치가 토함산의 남쪽 자락이다. 불국사 석가탑 사리함에서 나온 ‘묵서지편’에 의하면 토함산을 월함산(月含山) 또는 함월산(含月山)이라 했다. 사실 기림사가 있는 함월산과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토.. [
09/17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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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릉 중 가장 완비된 능묘 형식을 갖춘 원성왕릉(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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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검석인상 바깥쪽으로 직육면체의 편평한 돌 위에 크고 우람한 서역인 모습의 무사상이 있다. 동쪽 무사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왼손은 철퇴를 거머쥐고, 오른팔은 굽혀서 불끈 쥔 주먹을 오른쪽 가슴에 대고 있다. 서쪽 무사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오른손에는 철퇴를 잡고, 왼팔은 .. [
09/0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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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릉 중 가장 완비된 능묘 형식을 갖춘 원성왕릉(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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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릉은 진입로부터 왕릉에 이르기까지 500여m가 소나무 숲길이다. 1400여년 동안 왕릉을 지켜온 소나무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식물에 영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으로 알려진 것은 식물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무지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이며 심리학자인 페히.. [
08/1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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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릉 중 가장 완비된 능묘 형식을 갖춘 원성왕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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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릉에 대해서 『삼국사기』 「신라본기」 ‘원성왕’조에 능묘와 관련하여 ‘원성왕이 재위 14년 만에 돌아가시니 유해(遺骸)를 유명(遺命)에 따라 봉덕사 남쪽에 화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능묘를 조성했다는 내용이 없다.
『삼국유사』 「왕력」편 ‘원성대왕’조에는 원성왕의 능에 대해서.. [
07/3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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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릉 중 가장 완비된 능묘 형식을 갖춘 원성왕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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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은 신라 제38대왕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제36대 혜공왕 때 이찬 김지정(金志貞)이 반란을 일으키자 상대등 김양상(金良相)과 함께 반란을 진압하고 선덕왕이 즉위하자 상대등이 되었다.
선덕왕이 죽고 왕위를 계승한 원성왕은 재위 중 786년 당나라에 조공(朝貢)을 하고 신라왕.. [
07/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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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릉 중 가장 완비된 능묘 형식을 갖춘 원성왕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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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징조의 길몽, 크게 운수가 풀릴 용꿈, 아무 의미가 없는 개꿈, 불길한 징조의 흉몽, 무서운 악몽, 미래를 보여주는 예지몽, 아기를 점지해 주는 태몽 등 꿈의 종류가 참 많다. 꿈을 꾸고 해몽을 잘해 왕이 된 분도 있었다.
이성계가 청년 시절 설봉산의 귀주사에서 무술을 연마하.. [
07/0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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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석불좌상(影池石佛坐像), 차마 영지를 바로보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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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석불좌상은 영지(影池)에서 북동쪽으로 250m 정도 떨어진 소나무 숲속에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와 같이 아사달이 아사녀를 애타게 그리며 조성한 불상이라면 영지 쪽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데…
헤르만 헤세가 아내 니온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당신은 신비로운 마술사.. [
06/1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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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은 서라벌의 관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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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 「외물(外物)」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득어망전(得魚忘筌) 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어라.
득토이망제(得兎而忘蹄) 토끼를 잡으면 덫을 잊어라.
득의이망언(得意而忘言) 뜻을 알았으면 말을 잊어라.
그동안 석굴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
05/22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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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고의 석조미술품, 석굴암<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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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용어 중에 ‘착안대국(着眼大局) 착수소국(着手小局)’이라는 말이 있다. 대국적으로 생각하고 멀리 보되, 실행에 들어가서는 한 수 한 수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석굴암에 대한 글을 쓰면서 늘 이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불국토 전체를 보여주면서 조각상 하나하나에도 빈틈이 없.. [
03/19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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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고의 석조미술품, 석굴암<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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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신문을 펼치고 텔레비전 보기가 두렵다. 멀지 않아 나라가 결딴이 날 것 같다. 앞으로 중생을 제도할 미륵불은 56억7000만 년 후에 오신다니 까마득하다. 그런데 보살은 중생의 간절한 원에 따라 가끔 현신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여러 차례 나온다. 나라가 어지러우니 보살의 .. [
02/0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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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고의 석조미술품, 석굴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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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주실에 들어서면 바로 양쪽 벽에 본존상을 향한 자세로 조각되어 있는 범천과 제석천을 만나게 된다. 이 상은 우리나라 불교 조각에서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존상은 아니나, 그 조형적 우수성과 함께 불교 교리의 정수(精髓)를 함축한 고도의 상징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큰 관심의 대상.. [
01/1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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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고의 석조미술품, 석굴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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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대의 장편 무협 소설인 수호지에 ‘무송타호(打虎武松)’라는 말이 있다. 무송이 주막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큰 바위 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자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이야기이다. 이 무송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사람이 신라에 있었다. 진덕여왕 때의 일이다.. [
01/0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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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고의 석조미술품, 석굴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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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실에 들어서면 좌우 양벽에 각각 4구의 부조로 조각된 상이 있다. 이를 팔부신중 또는 천룡팔부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의 권속 또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들이다. 이기영에 의하면 입구에서부터 본존불을 향해 오른쪽으로는 가루라, 건달바, 천, 마후라가이며, 왼쪽으로는 아수라·긴나라·야차·용.. [
12/2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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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고의 석조미술품, 석굴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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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산을 뚫어 조성한 사원을 석굴사원이라고 한다. 석굴사원은 무덥고 건조한 인도에서 시작되어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수용을 했으나 바위 대부분이 아주 단단한 화강암으로 사암이나 석회암이 대부분인 이들 나라와 크게 달라 대규모 석굴사원을.. [
12/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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