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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경주신문 기자 / 1423호입력 : 2020년 01월 16일(목)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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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접시들은 있지만, 식욕은 없어요.
반지는 있지만, 이심전심은 없어요.
최소한 삼백 년 전부터 쭉.

부채는 있는데 - 홍조 띤 뺨은 어디 있나요?
칼은 있는데 - 분노는 어디 있나요?
어두운 해질 녘 류트를 퉁기던 새하얀 손은 온데간데없네요.

영원이 결핍된 수만 가지 낡은 물건들이
한자리에 다 모였어요.
진열장 위에는 콧수염을 늘어뜨린 채
곰팡내 풀풀 풍기는 옛날 파수꾼이
새근새근 단잠을 자고 있어요.

쇠붙이와 점토, 새의 깃털이
모진 시간을 견디고 소리 없이 승리를 거두었어요.
고대 이집트의 말괄량이 소녀가 쓰던 머리핀만이
킬킬대며 웃고 있을 뿐.

왕관이 머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어요.
손은 장갑에게 굴복하고 말았어요.
오른쪽 구두는 발과 싸워 승리했어요.

나는 어떨까요, 믿어주세요, 아직도 살아 있답니다.
나와 내 드레스의 경주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어요.
아, 이 드레스는 얼마나 고집이 센지!
마치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기를 열망하듯 말이죠.



-사라지므로 인간은 아름답다
↑↑ 손진은 시인
어느 도시에나 박물관은 있다. 우리는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을 통해 역사를 본다. 당대 인간들의 삶의 환경과 그들이 쌓아올렸던 화려한 문화의 정교미와 예술성을 본다. 왕관과 그릇과 잔과 칼, 수많은 복식들이 그렇다.

그러나 쉼보르스카의 시에서 고색창연한 유물을 통해 고대 문명의 기술을 읽는 인간주의적 관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접시는 있지만, 식욕은 없어요/반지는 있지만, 이심전심은 없어요”라는 서두부터 유물을 앞세우고 인간의 욕망이나 체취, 감정은 철저히 배제한다. 3연의 잠자는 파수꾼도 인간의 죽음을 암시한다. 물건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것을 사용한 인간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 시에서 전시된 물건과 인간은 유쾌하게 비교된다. 이는 현재 내가 착용하고 있는 사물에도 적용된다. “나와 내 드레스의 경주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어요./ 아, 이 드레스는 얼마나 고집이 센지!/ 마치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기를 열망하듯 말이죠.” 얼마나 신선하고 유쾌한가? 만물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는 인간들이 평범한 물건에도 못 미치는 존재라니! 인간은 사라지므로 아름다운 존재인 것이다.(“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두 번은 없다」) 그러나 인간과 겨루어서 승리를 거둔 그 물건들도 엄연히 “영원이 결핍된” 것일 뿐. 쉼보르스카는 그 물건들이 겪었을 세월의 풍파를 읽는다.

그런 점에서 쉼보르스카의 「박물관」은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자명하나 잊고 있었던 사실을 일깨워주는 명편이다.
경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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