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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백상아리
경주신문 기자 / 1431호입력 : 2020년 03월 19일(목)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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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불교문화대학
‘아, 장갑을 꼈어야 했나?’ 치킨을 건네받다가 배달 기사님 하고 손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사님 손이 찼던 느낌 때문일까, 미처 완벽한 준비를 못한 나를 자책하고 있었다. 그걸 눈치챘는지 아들 녀석은 나를 흘낏 쳐다보며 “아빠, 걱정 마, 그 정도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안 걸려!”하고 아빠를 안심시킨다. 먹다 남은 뼈다귀를 정리하면서까지 ‘그래도 괜찮겠지?’, ‘아니야, 혹여나...?’하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검푸른 바다가 무서운 건 그 속에 혹 상어가 있지 않을까 두려워서다. 적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공포는 배가 된다. 속을 알 수 없는 저 바닷속에 상어가 있는 것도 무섭지만 보이지 않을 때가 더욱 무서운 법이다.

물속 상황을 현실로 옮겨보자. 버스나 지하철 손잡이,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 이마트서 결제하고 건네받는 카드 등 죄다 백상아리 아가리만큼 공포스럽다. 정말이다. 엘리베이터를 앞에 두고 손가락으로 누를지 팔꿈치로 누를지 하는 실존적 고민은 ‘과잉’과 ‘최소’ 그 사이를 오간다. 정말이지 적이 보이기나 하면 힘 조절이라도 하지, 이건 뭐 일방적으로 지는 게임이다.

학교에서 치는 기말고사로 비유를 들어도 그렇다. 결과적으로 75점을 받을지언정 시험을 대비하는 과정에서는 누구나 100점을 맞을 기세로 덤벼든다. 빵점 받으려고 시험 준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다면 시험에서 잃어버린 25점은 그만큼의 과잉된 에너지 손실이기도 하다. 딱 75점만큼만 공부를 했더라면 그만큼 남는 시간에 게임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건 미래를 전혀 알 수 없는 인간에게는 의미 없는 가정일 뿐이다. 적절과 적당을 모르니 과잉으로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빙빙 돌아가는 두꺼운 안경을 낀, 내 고등학교 친구 하나가 주장했다. 버스 정류소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 간절한(?) 눈빛, 기대감, 조바심, 이런 걸 다 모으면 남북을 통일시키고도 남을 에너지라고. 어르신이든 갓난아이든 ‘오늘’만 살 수 있는 우리 인간에게 에너지의 과잉 소비는 역설적으로 생존에 더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진화심리학 담론을 즐길 때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워야 하는 현실이다. 정부의 발표는 우리를 안심시키기는커녕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마스크는 나의 비말(飛沫)을 막고 동시에 타인의 그것도 방어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장치 아닐까 싶다. 마스크 한 장의 과잉(!)조차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건 좀 아니다 싶다.

한편,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요즘, 아파트 여기저기서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바깥 생활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집에만 있으려니 다들 날카로워진 듯하다. 오른쪽 다리 깁스를 풀면 이제 왼쪽 다리가 탈 나는 것처럼, 변종 바이러스는 우리 마음도 갉아먹는 모양이다. 몸과 마음은 뗄 수 없는 하나이듯 긴장 상태를 지속하는 육체는 당연히 마음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에 갇힌 야생 동물이 왜 오래 못 사는지 이제야 알겠다.

어젯밤, 자꾸 나가자고 보채는 아들 시선도 돌릴 겸 위생적으로 기침하기를 연습했다. 고개를 돌려 팔 안쪽에다 기침하는 시늉도 번갈아가며 해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무의식 중에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 버릇 말이다. 미국의 어느 보건 책임자는 기자 회견에서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서 얼굴은 만지지 마라’고 해놓고 정작 본인은 손가락에 침을 발라 발표문을 넘기더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빠지면 안 된다. 코로나 관련 브리핑에서 “얼굴을 안 만진 지 몇 주나 됐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그리울 정도다”라고 했단다. 참모나 주변 기자들은 빵 터졌다. 그의 호언장담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습관이 참 무섭다. 머리로는 알지만 상황에 노출되면 사람은 늘 해왔던 익숙한 습관에 의존한다는 걸 새삼 확인한다. 아들과 둘이서 무의식적으로 올라가는 손을 서로 막느라 낄낄대는데, 와이프가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 하냐며 다가온다. 입술을 가볍게 긁으면서 말이다. 정말이지 백상아리,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경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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