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거리’… 청정 생태계 보전된 토함산 황용골의 작은 마을
험준한 산골서 피는 야생의 숨결… 세세토록 향유해야 할 소중한 자연유산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39호 입력 : 2020년 04월 23일(목)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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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국립공원 8개 지구 중 시부거리∼토함산 정상에 오르는 탐방로에는 야생화가 다수 보전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선괭이눈’, ‘천남성’, ‘노랑무늬붓꽃’, ‘앵초’, ‘분꽃’, ‘광대수염’, 멸종위기종인 ‘애기송이’, ‘구슬붕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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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안개 속에 얼굴을 가린 야생화를 만나고 우리 토종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별들을 보았다. 야생화와 별들이 나를 살렸다’-이원규 시인의 말 중에서.
경주시 동(洞) 중에서 가장 험준한 산골에 위치하고 있는 황용동은 경주에서 감포 간 국도주변과 남북으로 길게 두 골짜기를 타고 마을을 형성됐다. 해발 400여m의 추령의 서쪽에 해당하며 ‘시부거리’는 덕동호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도로명은 모두 ‘시부걸길’이다. 황용동 소재 ‘시부거리마을’은 경주국립공원 토함산 지구의 자연마을이다. 황용동의 작은 마을로 만호봉을 배경으로 경주국립공원 8개 지구 중 시부거리∼토함산 정상에 오르는 탐방로 초입에 위치하며 상수도 보호구역이기도 하다. 봄의 전령사인 변산바람꽃, 노루귀, 복수초와 같은 야생화 관찰지로 더욱 유명해진 마을.
마을 인근에는 멸종 위기종인 ‘애기송이풀’이 서식하고 있어 국립공원특별보호구역이 있을만큼 청정하고 건강한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일, 시부거리마을 탐방 하루 전날 봄비가 제법 내려선지 아직 수목들과 암석들엔 물기가 남아 있었다. 신선한 4월의 대기는 오후 따가운 햇살에 다소 느그러뜨려졌지만 도심보다는 훨씬 청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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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고의 시원(始原)에 닿을듯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계곡 폭포수의 흐름이 거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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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의 진흙땅을 ‘시북’, 구덩이를 ‘구디’라 하며 ‘시북구디’라 부르다가 ‘시북걸’, ‘시부거리’로 불려 ‘고향의 봄’이라는 곡과 절묘하게 어울릴듯한 자연부락 시부거리마을. 작은 마을은 사방으로 토함산에 안겨있는 형상이었다.
지난해 12월 국립공원공단 경주국립공원사무소는 시부거리마을 개선사업을 완료했다. 경주국립공원사무소 측은 방문객들에게 마을을 알릴 수 있는 랜드마크와 안내판을 설치해 마을의 브랜드가치를 높였다. 주민에겐 생활의 편의를 도모해주고 한편으론, 국립공원의 자원을 보전하는 상생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새로 단장해 더욱 말끔해진 마을 입구에서 마을 안내판을 만난다.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한 멸종 위기종인 '애기송이풀'에 대한 안내도 해 놓았다. 집집마다엔 자연친화적인 문패를 걸어두었다. 작고 작은 마을의 낡은 담벼락엔 이곳 자연풍광과 잘 어울리는 부담스럽지 않은 벽화로 단장해 두었다. 크고 작은 텃밭에서는 부부가 혹은 어르신 혼자 봄 농삿일에 여념이 없었다. 시부거리마을은 약 200년전 오천 정씨 집성촌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시부거리’라는 마을명은 정착 당시에 마을 앞 논이 커다란 늪지대로 물도 많이 나오고 잡초가 자라는 마을 환경을 묘사한 것이다. 이곳 방언으로 늪의 진흙땅을 ‘시북’, 구덩이를 ‘구디’라 하며 ‘시북구디’라 부르다가 ‘시북걸’, ‘시부거리’라고 바꿔 부르게 되었다. 인근에 ‘사시목’, ‘모차골’ 등의 자연 부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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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병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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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야생화 필 무렵부터 이맘때까지 탐방객 가장 붐비고 사진동호인들 단골 촬영지 오랫동안 야생화를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입소문이 났던 산골마을과 골짜기였다. 봄이 되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른 봄, 봄꽃이 필 무렵부터 이맘때까지 탐방객이 가장 붐비는 시기라고 한다. 이때는 전국에서 야생화 개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전국에서 사진사와 사진동호회들이 찾는 단골 촬영지기도 하다.
발 닿는 길 주변으로는 수십 종의 야생화들이 약초와 산나물들과 함께 자생하고 있었다. 산벚꽃과 연달래, 참꽃의 수줍은 분홍은 낙화로 사라졌지만 개화시기를 각기 달리해 피어나는 야생화들이 우리를 반긴다.
산 중턱으로 오르는 곳곳엔 비가 와서인지 천연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계곡 폭포수의 흐름이 거셌다. 폭포수의 낙차가 물안개를 이루며 낙수할 정도였다. 폭포수로 전체가 축축하게 젖은 주변의 거대한 암석들 틈새로 자란 이끼류와 이름모를 야생초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야생적이었다. 섬뜩하리만치 맑고 투명한 계곡물에 잠시 손을 담근다. 태고의 시원(始原)에 닿는 듯하다. 하산하는 탐방들에게 모르는 꽃이름을 물어서 알아낸 ‘붉은색 성냥꽃’이라고 하는 야생화도 있었다. 꽃이 피면 성냥불꽃처럼 핀다고 해서란다. 오후 네 시 경엔 벌써 산그림자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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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국립공원사무소는 지난해 시부거리마을 개선사업을 진행했다. 새로 단장해 더욱 말끔해진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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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의 보고(寶庫), 토함산지구 시부거리... 멸종 위기종인 ‘애기송이풀’ 자생 이곳에서 본 멸종 위기종인 애기송이풀은 존재 그 자체로 경이로웠다. 마치 플라맹고를 추는 여인의 치마폭이 연상된다. 이곳 토함산에선 앵초, 변산바람꽃, 개별꽃, 둥근털제비꽃, 각시붓꽃, 은방울꽃, 조개나물, 둥근잎 천남성, 줄딸기꽃, 괴불나무, 팥배나무, 남산제비꽃, 연분홍분꽃, 복수초, 병꽃, 분홍색 노루귀, 백합과인 중의무릇, 고추나무꽃 등의 흔하거나 희귀종 야생화들이 함께 자생한다. 탐방로 주변 계곡에서 자주 보이는 선괭이눈을 비롯해 마을 입구 탐방로에는 별꽃, 꽃다지, 현호색 등이 지천으로 핀다. 족두리꽃은 초입부터 발에 치일만큼 지천이었다. 마을 초입에는 광대수염, 미나리냉이도 지천이다. 산 중턱에선 또다른 명물인 앵초의 군락지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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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국립공원사무소는 지난해 시부거리마을 개선사업을 진행했다. 새로 단장해 더욱 말끔해진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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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이 동네에 약 30여 가구에 130여 명 주민들이 살았어요. 김씨, 손시, 정씨 세 성씨가 살았어요. 지금은 7~8가구에 10여 명 주민 살아요” 마을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산을 오르는 초입에 데크길이 시작되고 토함산 4.4㎞라는 안내판이 나타난다. 이 마을 어귀에서 고향이 시부거리인 한 어르신을 만났다. “옛날에는 이 동네에 약 30여 가구가 살고 있었어요. 이제는 8가구에 10여 명의 주민만 남아있지요.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있는 거지. 여기선 먹고 살 길이 없으니 다 떠났지요”
“예전엔 덕동호 한 가운데 있었던 마을에 덕동국민학교까지 아이들을 보냈지. 이 마을서 5리가 걸렸어요. 그러다가 약 30세대에 130여 명 정도로 주민이 늘자 이 마을서 가까운 황용분교로 다녔지요. 그때는 젊은 부부도 있어서 농사를 짓거나 벌목을 해서 땔감용으로 장작을 내다 팔기도 하고 생활을 꾸렸지요. 점차 아이들이 큰 도시로 떠났고 주민들은 경주 시내, 포항, 부산, 대구, 울산 등지로 떠났어요. 지금은 주로 80대 주민들과 젊은층이라야 70대 두 어명 정도요”
어르신은 이어 “이 마을은 우리 선조들이 다래 덤불 걷어내고 농토로 개간해서 농사 지은 곳이고 김씨, 손시, 정씨 세 성씨가 살았어요. 이 주변 개울은 원래 전부 논이었고요. 논농사로 겨우 가족들 식량거리를 해결했지요”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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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농가에서는 ‘어수리’라는 산나물을 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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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더 들면 공기 좋고 물 좋은 이곳에서 한 번 살아보세요” 마을 어귀 한 농가의 울타리 주변에는 화산석들로 보이는 특이한 돌들이 장식돼 있었다. 주인에게 물으니 큰물이 질 때 ‘만호봉’에서 흘러내려 주워놓은 돌들이라고 했다. 이 탐방로를 오르다보면 만호봉을 만난다. 화산폭발로 인해 생긴 만호봉에는 지금도 화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화산석 거품돌(부석(浮石), 화산의 용암이 갑자기 식어서 생긴 다공질(多孔質)의 가벼운 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만호봉은 토함산 중에 원형으로 솟아오른 봉우리로 화산석이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옛날 용암이 솟아올다가 식은 흔적이 있고 다양한 형태의 화산석들이 산재한다.
‘거북이 농장’이라는 허름한 간판을 단 어느 농가에서 ‘어수리’ 라는 산나물을 1㎏에 7000원을 주고 샀다. 깨끗한 지역에서만 자생 가능하다는 어수리 나물을 움켜쥔 주인아주머니의 손아귀 사이로 봄 미각을 돋우는 야생적 기운이 울컥거리며 후각을 자극했다. 어수리는 생으로 먹어도 되고 된장국에 넣어 끓여도 된다. 전으로 부쳐도 풍미가 탁월하다고. 농장 주인은 이 마을에 정착한 지 약 20년이고 주인은 원래 고향이 이 마을이라고 했다.
“수입은 따로 있어야하고 우리는 전원생활을 즐기는 정도예요. 이 마을 원주민은 거의 다 돌아가셨고 우리 부부가 70대인데 제일 젊어요(웃음). 포항이 집인데 농사철이 되면 거의 이곳에서 머물러요. 약 4000천여 평 농사거리가 있어서죠. 여름에 산딸기 출하되면 또 오세요. 이곳이 다른 곳보다 많이 추워요. 경주 시내보다 약 5도 정도 차이나죠. 기온 차가 커서 유독 이곳 딸기가 달아요” 6월 하순경이면 산딸기 수확철이라고 해서 꼭 다시 한 번 다녀가기로 주인장과 약속한다. 주인장의 웃음소리가 달콤하다.
경주국립공원 토함 지구에는 아름다운 자연의 생태계가 온전히 보전되고 있다. 야생화 및 산나물 등 야생식물의 채취금지는 물론, 취사나 야영은 할 수 없다. 어류를 잡거나 야생동물을 수렵해서도 안된다. 우리의 귀하고 소중한 청정 생태계의 보고인 이 산을 탐방하며 행여 풀잎 한 자락, 꽃 한 송이 스치고 밟을까 조바심쳤다. 우리 모두가 세세토록 향유해야 할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바로 이것이 시부거리마을 주민은 물론, 탐방할 토함산의 모든 자연을 존중하고 아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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