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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은 되찾아야 한다
경주신문 기자 / 1436호입력 : 2020년 04월 23일(목)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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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불교문화대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천천히 한 사람이 들어온다. 괜히 손에 든 식빵을 가슴 쪽으로 당긴다. ‘아, 사람이 옆에 오는 게 이렇게 두려웠던 적이 있었나?’ 혹 상대가 들을까 봐 마른침을 조심스레 삼켜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할퀴고 있는, 주말 아침 일이다.

인류가 진화해 오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이 관계 맺기다. 서로 긴밀하게 관계를 맺을수록 더 건강하고 오래 살 가능성은 커진다. 따라서 내향적인 성향보다는, 새로운 관계 맺기를 즐기고 그 외연을 넓히길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주로 환영을 받아 왔다. 그런데 웬걸, 밀폐된 공간에 낯선 사람조차 부담스러운 지금, 도대체 우리는 이런 낯섦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람이 보통 평생을 두고 경험하는, 가장 괴로운 고통에서부터 가장 행복한 기쁨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스펙트럼은 전부 인간관계로부터 나온다. 인간의 일생, 곧 탄생, 성장, 결혼, 자식 낳기, 생의 마감까지 모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유지된다. 인간은 그럼 왜 이렇게 타인과의 관계를 필요로 할까? 답은 뻔하다. 생존 때문이다. 눈앞에 날카로운 앞 이빨을 드러낸 포식자가 있는 한 나약한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연계가 불가피했다. 인간의 생존 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지기 때문이다.

맹수가 사라진 현대 사회라고 다르지는 않다. 주변을 둘러보면 무슨 말인지 안다. 노래 교실이 되었건 수영장 새벽반 모임이 되었건, 리더는 주로 목소리 크고 잘 웃는 아주머니다. 나이에 따라 왕언니나 형님으로 불리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의 관계 형성에 주도적이다. 그 행동들은 기본적으로 조직의 안녕과 번영에 맞춰져 있다.

한국 문화를 정의할 때 등장하는 감초 같은 키워드도 ‘가족주의(familism)’다.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한국 사회는 진입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단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면 한국인들은 웬만한 잘못은 다 넘어간다.’고 할 정도다. 우리는 노래 교실이나 수영장을 넘어 국가 단위의 거대 가족인 셈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터졌다. 조밀하고 단단한 조직 안에서 바이러스에 걸린 누군가가 재채기를 한다. 입을 닦은 그 손으로 다른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고 악수를 한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콧물이 흐르고 재채기가 터진다. 악몽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가벼운 재채기가 돌더니 죽음에까지 이르는 폐렴으로 전이된다. 단단하게 닫힌 구조를 가볍게 허물어 버린 바이러스는, 이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죽음의 도미노를 시작했다.

지금 추세라면 빨간색 돌기의 당단백질이 왕관처럼 뾰족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압승이다. 신입생으로 활기차야 할 모든 학교들은 잔뜩 웅크리고 있다. 한때 퇴직자들의 로망이었던 크루즈 여행은 다시 재개될 지도 의문이다. 눈에도 안 보이는 바이러스 하나가 정치, 경제, 문화, 외교 등 온 세상을 마비시켜 버렸다. 우한 소재 제철소가 멈춰 서니 전 세계 자동차·철강·조선업계가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코로나19의 범세계적 확산은, 우리가 구성하고 있는 조직이 얼마나 조밀한지, 동시에 얼마나 허술한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 손바닥엔 우려할 정도로 많은 병균이 숨어 있고, 아직 해독제도 없는 변종 바이러스지만 비누로 깨끗이 씻는 것만으로도 방어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자신을 희생하는 의사, 간호(조무)사 등 숨은 영웅들을 우리는 응원하고 있다.

문제는 죽음의 도미노는 언제쯤 멈출까 하는 거다. 각 개인과 국가 단위의 노력이 유지되는 한 지구는 그 항상성(恒常性)을 회복하리라 믿고 싶다. 인류는 오랜 세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를 잘 지켜왔다. 의도적으로 병적 상황을 만들면서까지 그 균형을 회복해 왔던 인류 아니던가. 그러기 위해서는 면역 체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성(毒性)이 아무리 강해도 ‘상처 없는 손’은 어쩌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건강 그 기본에 충실해 빼앗긴 왕관은 반드시 되찾아 와야 한다.
경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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