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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종이
경주신문 기자 / 1444호입력 : 2020년 06월 18일(목)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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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종이


                                                    문동만


벽지가 마르며 다 떨어졌다
딸아이의 방만큼은 울지 않게 해주려고
우는 종이를 꾹꾹 눌려 종일 애써 붙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분홍색 종이 이불을
덮고 있었다

마르며 울며 떨어지는 벽지를 보며
식구들은 일제히 웃기 시작했다
우는 종이가 웃는 종이가 되어버렸다

웃음이라는 낙법이,
비상보다는 낙법이 우리의 사상이었나

실수하지 않으려고,
덜 서운한 사람이 되려고,
실패로나 웃긴 사람이 되려고,

사는 것도 골계미가 될 수 있으려나
풀 먹어 잘 구겨지지 않는 벽지를 오래도록 접었다
종이배처럼 접혀지는 웃는 종이

거슬러온 샛강은 멀리 있었지만
젖었으나 해체되지 않는
불굴의
웃는 종이



-‘웃음이라는 낙법’을 가진 한 가족 이야기

↑↑ 손진은 시인
오랜만에 쿡쿡, 시의 첫 부분부터 그리고 군데군데서 연이어 웃음이 터지는 시를 만났다. 마음을 무장해제시키고 인생을 치고 들어와 공감을 하게 하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도저히 뚫고 나가기 힘든 삶의 무게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는 가족과의 공감에서 온다.

딸아이 방만큼은 화사한 벽지를 발라주자 큰맘 먹고 “우는 종이를 꾹꾹 눌려 종일 애써 붙”여 준 부모가 있었다. 그러나 웬 일? 딸아이는 새기운이 도는 자기 방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떨어진 벽지, “분홍색 종이 이불을” 덮고 새근새근 잘도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어이없는 그 모습을 보고 “식구들은 일제히 웃기 시작했다.” 삶의 비애를 너끈한 웃음으로 덮어주는 식구를 두고 시인은 “우는 종이가 웃는 종이가 되어버렸다”고 놀라운 반전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식구들이 오랜 동안 어찌할 수 없는 실패 속에서도 한바탕 웃는, “웃음이라는 낙법”의 생의 비밀을 사상처럼 터득한 덕분이다.

그 웃음은 가장의 입장에서는 “실패로나 웃긴 삶이 되”는 골계미다. 가족으로 하여금 망쳐버린 벽지를 “오래도록 접”어 종이배처럼 만드는 마음 자리이다. 샛강으로 표현되는, 이 가족의 힘든 삶 거슬러오르기는 참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젖었으나 해체되지 않는” 무거운 삶은 “불굴의” 종이로 가족 앞에 놓여 있다.

이 시는 내밀하게 연결된다. 쭈글쭈글하게 ‘우는’ 것을 막으려다 떨어져버린 벽지, ‘떨어지다’에서 ‘실패’의 의미와 함께 ‘웃다’, ‘웃는 종이’로 승화되는 미학을 함께 가지기에 힘이 있고,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끝내 우리를 굴복시키려는 ‘불굴’의 삶과 ‘웃음’으로 맞장을 붙는 기술 또한 가르쳐 준다. 좋은 시를 읽는 기쁨이 크다.
경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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