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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공 이번과 농재 이언괄의 연연루를 찾아서
경주신문 기자 / 1451호입력 : 2020년 08월 12일(수)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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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장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가운데 경주 출신의 회재 이언적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다시금 옥산서원을 찾아 그 자취를 더듬지만, 아쉽게도 만년에 사화에 희생되어 머나먼 강계로 유배되어 생을 마치면서 실상 외형적으로는 고향 경주에 회재학(晦齋學)을 오롯이 전하지는 못하였다. 다만 내면적으로 그의 정신세계는 많은 유자(儒子)에게 계승되고 있다.

회재의 동생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1494~1553)은 벼슬을 마다하고 실천적 학문을 행하며 노모를 봉양하였고, 윤원형 일파에 몰려 유배된 형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소문을 지어 규탄하였다. 가문을 유지하기에 애쓴 그의 노력에 힘입어 후손들이 뜻을 모아 농재선생과 그의 부친 찬성공(贊成公) 이번(李蕃,1463~1500)을 모신 세덕사(世德祠) 창건으로 이어진다. 문원공 회재선생 연보(年譜)에 의하면, “이번은 젊어서부터 선비로 이름이 있었다. 일찍이 본도(本道)의 하과(夏課)에서 수석을 차지하였는데, 성종께서 시부(詩賦)를 아름답게 여겨 불러서 만나 보고 옷과 물건들을 하사하였고, 성균관에 머물면서 공부하게 하였다. 뒤에 향리로 돌아가 날마다 후진들을 가르치며 지냈다.”며 간략하게 기술한다. 매산(梅山) 류후조(柳厚祚,1798~1876)가 지은 농재의 시장(諡狀)에 그의 행적이 상세히 들어있다.

1778년 건립된 세덕사는 현재 포항시 북구 기북면 덕동마을 용계정(龍溪亭:사의당) 뒷편에 있었다. 덕동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1565~1624)의 인연이 닿았고, 훗날 양동마을 농재의 현손이자 향단(香壇) 이의주(李宜澍,1566~1637)의 손자인 사의당(四宜堂) 이강(李壃,1621~1688)이 농포의 손녀(부친 鄭大榮)와 혼인하며 많은 재산을 물려받으며, 여강이씨 집성촌을 이뤘다. 농포의 별장으로 사용된 용계정은 정조 이후에 세덕사의 부속 건물인 강당으로 사용되었고, 이어 연연루(淵淵樓)로 불렸으며, 회재학의 연원은 부친 이번으로부터 가학(家學)의 연원이 시작된 것을 기리기 위해 물이 모이는 못 ‘연연(淵淵)’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겼다,

전주이씨 간옹(艮翁) 이헌경(李獻慶, 1719~1791)은 약남(藥南) 이헌락(李憲洛,1718~1791)과 깊은 교유가 있었고, 세덕사 건립과 문루(門樓)의 내력까지 공유하게 된다. 내헌(耐軒) 이재영(李在永,1804~1892)은 설남(雪南) 이정익(李鼎翊,1734~1793)의 행장에서 “일찍이 9대조 찬성공과 작은 할아버지 농재공 두 분을 모시는 세덕사를 덕연마을에 세울 것을 의논하였고, 절의를 강론하여 결정해 영구히 따르고 행할 규범으로 삼았다(『耐軒集』卷6,「行狀·王考成均生員雪南府君家狀」, 嘗議建德淵世德祠 爲九代祖贊成公 叔祖聾齋公兩世腏食之所 而講定儀節 爲永久遵行之規).”며 세덕사 건립의 동조인물과 과정 등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향정(二香亭) 이범중(李範中,1708~1783)이 세덕사상량문을,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1711~1781)은 덕연별사 봉안문 축문(德淵別祠奉安文 代本孫作)을 지어 기쁨을 나누었다.
1789년에 지어진 「연연루기(淵淵樓記)」는 이정응(李鼎凝,1743~1796)이 약남(藥南) 이헌락(李憲洛,1718~1791)의 편지를 들고 간옹(艮翁) 이헌경(李獻慶, 1719~1791)에게 부탁한 것으로 농재선생의 행실에 대한 깊은 감명이 함축되어 있다.

연연루기 - 간옹 이헌경
물은 한결같아서, 흐르면 시내가 되고, 모이면 못이 된다. 그 아래로 베풀어지는 공로는 못이 진실로 시내에 미치지 못하지만, 물이 모이지 않으면 그 흐름이 어찌 길겠는가? 따라서 시내는 반드시 못을 바탕으로 하니 못의 공로가 적지 않다.

경주 이정응이 종숙 함창공(咸昌公) 이헌락의 편지를 가지고 나를 찾아와 아뢰며 ‘연연루’ 기문을 청하였다.

나는 “연연(淵淵)의 뜻이 무엇인가?” 물으니, “선조 찬성공 이번(李蕃)은 회재 선생의 부친으로, 찬성공은 학문과 문장으로써 가문을 창도하였으며, 회재의 동생 농재 지평공(持平公) 역시 지극한 효우(孝友)의 행실로써 그 아름다운 자취를 이었습니다. 후손들이 추모경앙(追慕景仰)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수백년 동안 줄어들지 않았기에, 이에 덕연(德淵)마을에 세덕사(世德祠)를 세워 향사지내고, 또 사당 앞에 누를 세우고 ‘연연루’라 편액하였으니, ‘연연’이라고 한 것은 가학의 연원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하였다.

회재선생이 끊겼던 학문을 창도 표명하여 동방유학의 종사가 되었고, 퇴계선생이 그를 위해 “선생의 가문에 전해오는 학문[家學]은 진실로 그 유래가 있으니, 어찌 학문의 연원이 가정에 있거늘 다른 데서 구할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라 찬하였다.

아! 찬성공 이번은 이미 못이 되었고, 또 반듯한 아우가 그 연원을 접하였다. 그리고 회재는 그 흐름을 인도하여 더욱 크게 되었으니, 이같이 성대한 기운을 막을 수 없도다. 우리들은 후손들이 그 흐름을 따르고 그 연원을 잊어버릴까 두려워 ‘연연루’라 이름한다.
경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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