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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책무
경주신문 기자 / 1451호입력 : 2020년 08월 12일(수)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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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평 변호사
(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초등학생 때의 일로 기억한다. 요즘처럼 비가 많이 오거나 센 바람이 불면 과수원에는 낙과가 무척 많다. 리어카에 주워 모은 풋사과를 가득 싣고 와 파는 사람이 있었다. 맛이 채 들기 전이어서 너무나 시고 떫은맛이었다. 하지만 항시 배가 고프던 시절이라 10원을 내면 10개도 더 주던 그 사과에 눈이 꽂혔다. 허겁지겁 깎지 않은 채 먹었다. 그런데 그 사과에는 농약이 잔뜩 묻어있었다. 먹으면서 조금씩 이상한 냄새에 신경이 쓰였다. 그럼에도 계속 먹었다. 목 안이 화끈거리며 타들어가던 느낌이 지금도 선연하다. 물론 병원에 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으나 당시 연탄을 난방의 주재료로 한 탓에 연탄의 연소 시 나는 일산화탄소가 째진 방 밑을 타고 들어와 중독되는 사고가 빈발했다. 거기에 딱 걸렸다. 일어나서 걸음을 옮기다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났다가 쓰러졌다. 이때도 동치미 한 사발 마신 것 외에는 약 한 번 먹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외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신통하게 생각되는 몇 가지 일들이 더 있다. 나는 어째서 살아남았을까? 그런 정도의 일은 나에게 주어진 조건들을 활용하여 혼자서 충분히 극복해내었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내가 가진 신체적 조건이 우연히 남들보다 바교적 나아서 농약이나 연탄가스 중독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고, 조금 허약했더라면 죽을 수 있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아마 후자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때때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 그 위기를 거치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쓰러진다. 빈곤으로 약을 제대로 복용을 못하거나 병원에 갈 수 없어서 혹은 선천적으로 약한 몸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살아남은 자는 여기까지 함께 오지 못한 이들을 향하여, 그들이 가진 특수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왜 너희들은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니? 나처럼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의지를 가지지 못했니?

더욱이 가난한 가정에서 쓴 맛을 보며 자란 이가 좋은 머리를 타고 나서 명문학교를 나와 또 번쩍이는 직업을 가진 경우에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심화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 중에서도 자신이 겪어야 했던 질곡과 난관을 기억해내며,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다. 그 시선은 그가 가져야 할 책무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갖는다.

이렇게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이 사람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문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트럼프 대통령의 조카인 메어리 트럼프가 최근 ‘넘치면서도 더 욕심을 내는(Too Much and Never Enough)' 이라는 책을 내어, 책 속에 트럼프 가문의 일화들을 소개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부는 독일 이민자로 파란만장하게 밑바닥 인생을 기었다. 그러나 그 가문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켰다. 하지만 가문에 진하게 밴 자기보다 열등한 자에 대한 무시, 경쟁에서 이겨 가진 것을 더 불리는 것만이 최고의 미덕이라는 분위기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내려왔다. 그래서 ’넘치면서도 더 욕심을 내는 ‘책 제목은 그 가문의 가풍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집안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성차별주의자(sexist)이자 인종차별주의자(racist)로 길러졌고, 그 젊은 시절의 트럼프 기질이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하는 것이 메어리의 설명이다. 한 마디로 말하여, 그들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책무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나라를 경영할 정치지도자는 아무래도 과거에 온갖 신산(辛酸)을 다 맛보며 자신의 비참하고 고달픈 처지에 때때로 눈물을 흘리기도 한 이가 적합하다고 본다. 그런 이라야 살아남은 자로서 가지는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사회적 통합을 잘 실현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외관에 너무 속지는 말자. 트럼프 같은 자들이 간혹 섞여 있다. 2022년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시간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신 평] 서울대법대 졸, 미국·일본·중국의 각 대학에서 연구, 서울 등 각지 법관 역임, 전 경북대 로스쿨 교수, 전 한국헌법학회 회장. 현 변호사, (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중국 인민대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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