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나들이… 고요한 신라왕들의 무덤에서 생의 활기 충전해볼까!
왕릉과의 근사한 데이트… 고도의 근원적 아름다움 선사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53호 입력 : 2020년 08월 27일(목)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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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봄 군락을 이루는 진달래가 아름다운 헌강왕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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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적인 것을 보여주는 능이 있기에 고도의 풍경은 아름답다’-‘강석경의 경주산책’ 中에서.
코로나 19의 기세가 등등하다. 그러니 여행자의 시선도, 지역민의 외출도 경직일로다. 이럴 때 갑갑한 심사를 트여주는 경주 왕릉 산책은 어떨까. 경주의 왕릉은 경주의 핵심 키워드자 상징이다.
경주 도심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왕릉을 찾으며 인접한 유적지와 연계해 감상해 본다면 안전하면서도 의미있는 사색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 관광객들이 몰리기 일쑤인 이름난 유적지에선 맛볼 수 없는 호젓함을 즐기면서 느릿느릿 능을 산책하는 길은 마시멜로우를 먹는 것처럼 달콤하다. 왕릉 가는 길은 소나무 숲을 지나야하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마저도 각기 다른 모습이며 어떤 계절에 찾느냐에 따라 그 감상을 달리할 수 있어 특히 매력적이다. 차 한 잔을 담아 출발하는 솔숲에 에워싸인 왕릉과의 데이트!! 왕릉으로 이르는 솔숲을 거닐며 지친 내면을 위로하고 쓰다듬어 주는 일은 상상보다 근사해 다시 일상을 견디는 큰 힘이 될테니 말이다.
여름의 왕릉 솔숲은 생기가 가득했다. 왕릉을 내려오며 길을 되짚어 돌아보면 왕릉은 또 다른 풍치와 풍경을 선사한다. 지난 23일과 24일, 비교적 도심과 멀지 않은데도 경주인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경주 경덕왕릉, 경주 진덕여왕릉, 경주 정강왕릉, 경주 헌강왕릉 등 네 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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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이지신상으로 장엄한 탱석과 난간석, 회랑 등 화려한 멋을 자랑하는 경덕왕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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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경덕왕릉... 신라 왕릉이 지닌 매력 두루 갖춘 격조 있는 왕릉, 꼭꼭 숨어있어 더욱 신비롭고 격조 있어 경덕왕릉은 사적 제23호로 경덕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경덕왕은 중앙 관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지방 군현의 이름을 당나라식으로 바꾸었으며 불국사와 석불사를 창건하고 춘양교와 월정교를 놓았으며 황룡사 대종을 주조했다.
이 능은 왕경의 서남쪽에 해당하는 산 능선 위에 있다. 내남 용장마을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경덕왕릉 표지를 만난다. 중앙고속도로를 이고 있는 교량 하나를 지나면 곧장 내남 덕천리가 나타나고 마을 안쪽에는 1000년 수령을 자랑하는 노거수를 발견한다. 경덕왕릉 주변은 영락없는 농촌의 한 풍경이다. 시골의 이런 작은 마을에 이 왕릉의 존재를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꼭꼭 숨어있다. 능은 멀리서는 얼핏 왕릉을 감추고 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평범한 모양의 야산 속에 있었다. 그러나 왕릉의 입구부터 아연실색하게 하는 울울창창한 소나무의 물결은 가히 압도적인 장관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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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어 더욱 놀라웠던 경덕왕릉 십이지신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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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시 경 이 능을 찾았는데 서쪽으로 기울어진 해는 솔숲의 명암을 더욱 짙게 하고 있었다. 태양은 어두컴컴한 솔숲에서 시선이 멈추는 끝자락에 있는 능을 향해 마치 집중 조명을 비추는 형상이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는지 능을 오르는 흙길은 푸석거리고 울퉁불퉁했다. 자연스런 질감에 만족할 즈음 이 왕릉의 능역이 유난히 넓은 것이 느껴졌다. 특히 이중 둘레돌에 놀라게 되는데, 둘레돌의 버팀돌에는 갑옷을 입고 무장을 한 십이지신상이 부조로 조각돼 있다. 십이지신상은 마모는 되었지만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어 더욱 놀라웠다. 몇몇 십이지신상은 매우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 신상들의 자세나 표현 수법은 신라 미술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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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덕왕릉 이중 둘레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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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석 사이에는 같은 크기의 판석이 일정한 간격으로 깔려져 있었다. 성덕왕릉 이후부터 신라 하대 이전까지의 왕릉은 그 크기가 고총고분에 비해 축소되었으나 이 능은 십이지신상으로 장엄한 탱석과 난간석, 회랑 등으로 화려한 멋을 자랑한다. 이 능 외에 회랑과 난간석을 두른 고분은 성덕왕릉과 김유신묘뿐이다. 신라 왕릉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두루 갖춘 격조 있는 왕릉이었다. 그러니 경덕왕릉을 처음 찾은 기자는 기대 이상의 능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지를 수밖에......
이 능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왕릉의 규모나 격조에 비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점과 도심서는 15분 정도 걸리는 시골마을에 위치해 있어 표지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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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덕여왕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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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진덕여왕릉...능역 소담스럽고 아파트 촌 지척에 있어 아이들과 산책하기 좋아 경주 진덕여왕릉은 사적 제24호로 신라 제28대 진덕여왕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진덕여왕은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이다. 신라의 두 번째 여왕으로서 김춘추와 김유신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고 재위기간(647~654)에 관료와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당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적극 받아들였다.
이 무덤은 안태봉 남쪽 은선에 단독으로 있다. 현곡면 오류리에 있는 이 능은 아파트 군락을 지나 산의 9부 능선 즈음에 있다. 오후 6시 30분 도착한 진덕여왕릉은 주차장이 따로 있는데 여기서 약 5~6분여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오르는 길은 제법 숨이 찰 정도였다. 이 능은 경덕왕릉에 비해서는 소박한 고졸미를 자랑한다. 위압적이지 않고 능역도 소담스럽다. 능의 가장자리에는 돌판과 버팀돌로 둘레석을 둘렀고 버팀돌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십이지신상을 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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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덕여왕릉 다녀간 흔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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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부분의 십이지신상은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마모돼 있어서 안타까웠다. 다른 왕릉에 비해 십이지신상이 작고 조각이 얕아 신라 왕릉의 십이지신산 중 늦은 시기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남아있는 석재도 능 옆 한쪽에 놓여 있었다. 경덕왕릉 봉분에는 하늘거리는 연분홍의 무릇이 한창이었다면, 진덕왕릉의 봉분에는 오이풀이 자라고 있어 매우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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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강왕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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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헌강왕릉...능역 주변의 소나무와 함께 이른 봄 군락 이루며 피는 진달래가 압권 경주동남산 가는 길에서 통일전으로 가는 도중, 만나는 두 왕릉이 있다. 옆으로 난 길로 신라 49대 헌강왕릉, 50대 정강왕릉이 차례로 나타난다. 특히 이 두 왕릉은 능역 주변의 소나무와 함께 이른 봄 군락을 이루며 피는 진달래가 아름답기로 이름나 있다. 정강왕릉에서 헌강왕릉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따라 소나무 숲 사이는 온통 진달래 정원이 된다. 경주 왕릉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 중 능 주변에 진달래꽃이 피는 3월말은 ‘엄지 척’이다. 지금은 여름, 진달래 능선의 흐드러진 꽃 사태 감상은 할 수 없지만 솔숲에서의 산책은 차분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이곳은 경주 남산의 북동쪽 자락이다. 사적 제187호인 헌강왕릉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헌강왕은 불교와 국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문치를 지향했다. 재위기간(875~886)에 해마다 풍년이 들어서 태평성대를 이뤘다. 무덤 아래 4단의 둘레석이 둘러져있고 1993년 발굴 조사로 석실내부 구조를 확인했다. 무덤보호석을 4단으로 쌓아올린 것은 삼국통일 이후 신라 왕릉에서 보기 드문 형식이라고 한다.
현재, 경주박물관과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을 잇는 2.3㎞ 구간에 자전거도로를 조성하고 있다. 이 길이 완성되면 자전거를 타고 왕릉까지 산책해도 좋을 듯하다. 이 숲에서는 꼭 아침 산책을 권하고 싶다. 이른 아침 산행을 하고 이 능을 잠시 들렀다 가는 이도 만날 수 있었다.
모 업체에서 왕릉 입구에 ‘묘터이장, 묘터 알선’ 등의 불법현수막이 소나무 사이로 걸려있었는데 볼썽사나웠다. 속히 제거돼야 할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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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가 진행중인 정강왕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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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정강왕릉...중첩되며 구불거리는 소나무의 몸통은 하나의 비구상작품 경주 정강왕릉은 신라 제50대 정강왕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헌강왕릉에서 통일전 주차장쪽으로 잠시만 걸으면 정강왕릉이 나타난다. 정강왕은 경문왕의 둘째 아들로 헌강왕의 동생이다. 능의 위치도 가깝고 세상을 뜬 날짜도 같다. 그런데 정강왕 재위기간은 886~887로 만 1년에 불과하다. 정강왕은 형이 죽고 장례를 치르고 왕이 된 후 채 1년도 못돼 죽어 치적도 기록도 짧을 수밖에 없다.
능 입구서 200미터 정도 오르면 능을 만난다. 아침 8시경 찾은 여름 솔숲 왕릉에는 새소리와 매미소리가 쟁쟁거렸고 햇살은 아직 아침이슬을 덜 걷어낸 채 숲은 이제 막 깨어나고 있었다. 습기가 가득한 숲에는 소나무 정령들이 반기는 듯하다. 햇살은 깊은 소나무 숲 사이로 얼룩거리며 점차 그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중첩되며 구불거리는 소나무의 몸통은 하나의 비구상작품으로 보이고.
능 주변에는 씨앗이 발아돼 어린 소나무 묘목이 자라고 있었다. 지척에서 이런 솔숲을 가진 도시가 몇 있을까.
이 능의 보호석으로는 십이지신상 없이 다듬은 돌로 3단을 쌓아 만든 단아한 둘레석이 둘러져있다. 역시 능 오른쪽에는 부재로 보이는 석재들이 놓여있다. 현재, 정강왕릉은 유적 정비를 위한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직접적인 능역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으나 충분히 둘러볼 수는 있었다.
왕릉들은 얼핏 그 모양이 유사해보이지만 능을 장엄하는 양식들이 다르고 주변의 경관도 각기 다르다. 이런 특징들을 비교해가며 감상해보면 더욱 좋을듯하다. 능은 반드시 360도 온전히 한 바퀴를 둘러보아야 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다라 그 감상의 맛이 다르고 사진에 담겨지는 모습도 다르기 때문이다. 둘레돌의 세밀한 아름다움과 차이도 감상할 수 있으니까.
자연스런 왕릉의 경관을 최대한 존중하고 보존하되 제멋대로 해석해 왕릉을 꾸미는 일은 신중해져야 한다. 더욱 세심한 관심과 손길이 꾸준히 이어질 때 왕릉을 찾는 이들의 발길은 잦아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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