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사회
운문행
경주신문 기자 / 1456호입력 : 2020년 09월 17일(목) 12:35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운문행


                                                백무산


운문재 넘다 비 만났다
흠뻑 만났다
바람 그늘을 서늘하게 거느린 비
수십만평 한다발로 퍼붓는 비
만난 게 아니라 먹혔다
한점 피할 곳 없는 고갯길

​달려도 웅크려도 물구나무를 서도
피할 길 없는 비의 창살
젖은 게 아니라 갇혔다
갇힌 게 아니라 비에게 뜯어 먹혔다

​나무 한그루 피할 곳 없는 초원이라면
그곳에서 마주친 맹수라면
공포는 잠깐 기꺼이 그에게 먹혀야 하리
뜯어 먹혀 그들 무리가 되리

​피할 수 없는 날은 오지
먹고만 살았으니 먹혀야 하지
운문의 아가리에 들어가야 하는 날이

​고요는 비바람 회오리처럼 오네



-삶은 운문행이라는 화두
↑↑ 손진은 시인
피할 곳 없는 길에서 비를 만나본 적 있는가? 후두둑 두들기는 비에 속수무책 맞다가 아예 비와 한 몸이 될 정도로 젖어본 적은?

운문재를 넘다가 “수십만평 한다발로 퍼붓는 비”를 만난 경험을 담고 있는 이 시의 묘사는 ‘상像’을 확대하기에 가장 좋은 예다. “바람 그늘을 서늘하게 거느린 비”는 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묘사다. 그러나 이어지는 “만난 게 아니라 먹혔다”에 이르면 시상이 아연 확대된다. 나아가 비에 젖는 모습은 “달려도 웅크려도 물구나무를 서도/피할 길 없는 비의 창살”에 갇히는 것으로, “뜯어먹”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먹히다니. 비가 내게 달려들어 먹는다는 것이다. 비가 한 마리 맹수가 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뜯어 먹혀 그들 무리가 되리”에서는 우리가 죽어 비로 흩어짐을 암시한다. 불교적 인연관이다. 깨달음을 동반한 묘사의 변화와 전환이 이 정도라면 한국시의 한 정점이 아닐까.   우리는 비에 먹히는 것일까? 시인은 넌지시 우리의 욕망을 질타한다. “먹고만 살았으니 먹혀야 하지”. 비는 운문(구름의 문)을 부르고 그것은 “운문의 아가리에 들어가야 하는 날”로 건너뛰어 죽음을 암시함을 어렵지 않게 확인하게 한다. 먹느라 뚱뚱하다 못해 비대해진 우리들 욕망. 그러나 그런 날은 오고야 말지. 우습지 않은가? 아니 허망하지 않은가? 아무리 “웅크려도 물구나무를 서도 피할 길 없는” 죽음이 우리를 먹어치우는, 그래서 우리도 운무로 흩어지는 날이 온다는 것. 그러니 우리 삶은 알고 보면 운문행이지 않겠는가. 이 삶의 고요는, 이런 깨달음은 “비바람 회오리처럼” 급습하듯 오는 것이니.
경주신문 기자  
- Copyrights ⓒ경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최신이슈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최신뉴스
경주서 연휴 사흘간 확진자 13명 추가 발생..  
경주 희망농원 ‘고병원성 AI’ 최종 확인..  
경주서 교회발 감염 9명 등 11명 추가 확진 ..  
기대하지 않았던 시필이 작품이 되다..  
코로나19 위기 적막강산이지만 이겨내자..  
방치된 경주경마장 부지 보존·활용 기대한다..  
지방자치법 제·개정과 주민참여 경주 기대..  
남산에 눈이 내리면 어떤 음악소리가 울릴까..  
그럼에도… 경주역 광장 크리스마스트리가 전하는 희망의 메..  
경주 의병장 김득복과 김득상의 자취를 찾아서..  
오르페오가 뭐길래?..  
북촌을 거닐며 본 성건동의 내일…!!..  
포석정(3)..  
담뱃값으로 자전거 산 오기택 씨..  
경주공무원공상유공자회, 사랑의 마스크 1만장 기부..  
광고・제휴・기사제보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기자윤리실천요강 기자윤리강령 편집규약
제호: 경주방송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69 (노동동) 2층 / 발행인·편집인 : 이상욱
mail: egbsnews@hanmail.net / Tel: 054-746-0040 / Fax : 054-746-0044 / 청탁방지담당관 이상욱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아00214 / 발행·등록일 : 2012년 04월 09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욱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