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사회
경주에 사는 즐거움
경주신문 기자 / 1457호입력 : 2020년 09월 24일(목) 13:22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 신 평 변호사
(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사주팔자에 역마살이 끼었으면 이사를 자주 다닌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역마살이 낀 모양이다. 숱한 이사를 하고, 여러 곳에서 살다 지금은 경주에 안착하였다. 부초(浮草)처럼 떠돌며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이켜본다.

지금은 나와 내 가족들 모두의 본적지(등록기준지)는 경주이나, 나는 원래 대구 토박이다. 부모 양계에서 모두 임진왜란 무렵부터 대구에 살아왔다. 여기에서 쭉 살다 18세가 되어 서울로 대학 유학을 떠났다. 그래서 15년 가까이 서울에서 사는데,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를 여기서 모두 보낸 셈이다. 대학 다닐 때 하숙집을 자주 옮겨 다녔는데, 이삿짐을 리어카에 싣고 다닌 기억이 아련하다.

나중에 판사로 서울지역에서 근무하다 1988년에 경주지원으로 발령받았다. 개인 사정으로 분황사에 기거하였는데, 심한 우울증으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러다 한국 법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에 파견되어, 동경에서 살았다. 이때의 경험은 내 인생에 아주 색다른 시각을 제공해주었다. 귀국 후 대구 법원으로 옮겼다가 항명파동을 일으키며 법관직에서 축출되었다. 그것이 1993년 여름인데, 그 조치가 너무 과하다는 말이 사법부 내부에서 일었다. 다시 법관으로 재임명된다는 말이 있어 그 여름과 가을, 겨울을 계속 기다렸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나 자신 다시 법관으로 일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여, 엄동설한에 겨우 걸음을 걷는 어린 딸과 아들의 손을 잡고 경주로 왔다. 아이들의 외가곳이기도 한 경주로 내려오며, 여기서 뼈를 묻을 때까지 다시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변호사를 할 처음에는 대법원장과 싸우고 법원을 나온 사람이라는 말이 떠돌며 누구도 사건을 맡기지 않았다. 경주경찰서에서는 수시로 내 사무실을 찾아와 체크를 하였다. 그러다 판사와 검사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동정론이 일고, 또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대구와 경북 지역을 통틀어 단순히 사건수임건수로 친다면 랭킹 1위의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변호사를 5년 정도 짧게 하다가 효성가톨릭 대학에서 법학교수로 초빙을 받았고, 또 이어서 경북대학이 로스쿨 창설을 준비하며 창설요원의 한 사람으로 나를 선발하였다. 서울 소재 유수의 대학에서도 초청을 받았으나, 경주에서의 삶을 중히 여기며 거절하였다.

그런데 대학교수가 되니 서울에 갈 일이 많아졌다. 더욱이 2007년에 한국헌법학회의 회장으로 선출된 이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서울에 가야했다. 부득이 대구에 전셋집을 얻어 이사를 하였으나, 경주집은 그대로 두었다.

대학교수 생활을 하며 미국에 1년 좀 넘게 식구들과 다녀왔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옛날 로마제국의 후예이고, 미국을 중심으로 온 세상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아이들 셋은 이때 모두 직독직해로 영어를 깨쳐 이후 영어에 관한 한 큰 어려움 없이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이 무척 다행스럽다. 그 후 중국에도 잠시 다녀왔는데, 당시 경주중학 1학년이던 아들놈이 사춘기를 너무 티나게 하여 학교의 양해를 얻어 학기 중에 덥석 안고 베이징에 가버렸다.

2018년 20년 남짓의 대학교수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경주로 내려왔다. 길게 지속되었던 역마살이 이제야 끝났다. 이곳에서 변호사로 조금씩 사건을 처리하고, 농사일을 한답시고 한다. 매일 일찍 일어나 집 옆의 밭에서 땀이 흐르도록 노동을 하는데, 이것이 주는 충일감은 대단하다. 또 이곳저곳 들어오는 원고청탁을 받아 글을 쓴다. 인터넷 세상이 되어 시골에서 살아도 거의 불편함이 없이 세상과 소통한다. 무엇보다 부드러운 곡선의 경주 산하(山河)가 빚어내는 독특한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것이 기쁘다.

노자가 말한 부쟁이선승(不爭而善勝)의 삶을 꿈꾼다. 남과 다투는 일 없이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떠돌이 생활을 끝내고 경주에서 이렇게 한가로이 사는 것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리를 둘러봐도 저리를 둘러봐도 곳곳에 감사해야 할 덩어리가 눈에 띈다. 모두 경주와의 인연에서 생긴 것들이다. 환하게 비치는 축복의 빛을 늙은 몸 안으로 깊숙이 받아들인다.
경주신문 기자  
- Copyrights ⓒ경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최신이슈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최신뉴스
경주서 연휴 사흘간 확진자 13명 추가 발생..  
경주 희망농원 ‘고병원성 AI’ 최종 확인..  
경주서 교회발 감염 9명 등 11명 추가 확진 ..  
기대하지 않았던 시필이 작품이 되다..  
코로나19 위기 적막강산이지만 이겨내자..  
방치된 경주경마장 부지 보존·활용 기대한다..  
지방자치법 제·개정과 주민참여 경주 기대..  
남산에 눈이 내리면 어떤 음악소리가 울릴까..  
그럼에도… 경주역 광장 크리스마스트리가 전하는 희망의 메..  
경주 의병장 김득복과 김득상의 자취를 찾아서..  
오르페오가 뭐길래?..  
북촌을 거닐며 본 성건동의 내일…!!..  
포석정(3)..  
담뱃값으로 자전거 산 오기택 씨..  
경주공무원공상유공자회, 사랑의 마스크 1만장 기부..  
광고・제휴・기사제보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기자윤리실천요강 기자윤리강령 편집규약
제호: 경주방송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69 (노동동) 2층 / 발행인·편집인 : 이상욱
mail: egbsnews@hanmail.net / Tel: 054-746-0040 / Fax : 054-746-0044 / 청탁방지담당관 이상욱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아00214 / 발행·등록일 : 2012년 04월 09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욱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