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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릉(3)
경주신문 기자 / 1463호입력 : 2020년 11월 12일(목)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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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애 시인,
경북문화관광해설사
까마득히 멀어져간 첫사랑의 엽서처럼 낙엽이 흩어지고 있다.
뒷모습 쓸쓸한 그대의 어깨위로 얹히는 가을이 깊다.
시를 읽고 시를 쓰는 존재의 숨결이 하도 고독해, 거침없는 통증으로 앓은 가을이다.
사색의 늪에 홀로 내동댕이쳐진 침잠의 방, 시와 연애하며 낳은 눈물 한 방울 흠집 맑은 곡옥으로 여물릴까!
가을 내내 견디며 아물린 상처들이 흉터 환한 시어(詩語)로 결실 맺었으면 싶다.

【삼국유사】 원년(B.C.69) 임자년 3월 초하루에 6부의 시조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알천(북천) 남쪽언덕에 모여 의논했다. “우리들 위로 백성을 다스릴 군주가 없으니 백성이 모두 방종하고 안일하여 제 마음대로 하고 있다. 덕 있는 사람을 찾아 군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높은 곳을 올라가 남쪽을 보니 양산(陽山) 기슭의 나정(蘿井) 옆에 번갯불 같은 이상한 기운이 드리워 있고, 백마(白馬)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곳을 찾아가보니 자줏빛 큰 알이 있었다. 사람을 본 말은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알을 쪼개니 단정하고 아름다운 남자아이가 나왔다. 모두 신기함에 놀라워하며 동천(東泉)에 목욕을 시키니 광채가 났다.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밝고 환해졌다. 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혁거세왕 혹은 불구내왕이라고 칭했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축하의 말을 전하며 기원했다. “하늘의 자손이 이미 내려왔으니 덕 있는 배필을 맺어드려야 한다.” 이날 사량리 알영정가에 계룡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로 여자아이를 낳았다. 매우 아름다운 용모였으나 입술이 닭부리와 같았다. 월성 북쪽 도랑물에 목욕을 시키자 부리가 떨어져 나갔음으로 그 내를 발천(撥川)이라 하였다.
남산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성스러운 두 아이를 모셔 길렀다. 알에서 태어난 남자아이 성을 박(朴), 여자아이는 우물이름을 따 알영(閼英)이라 했다. 13세가 된 오봉(五鳳) 원년 갑자(BC57)에 왕과 왕후로 세우고 나라이름을 서라벌이라 했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되던 날 왕은 하늘로 올라갔는데, 7일 후에 시신이 땅에 떨어져 흩어졌다. 왕후도 세상을 떠났다. 백성들이 한 곳에 장사지내려 하자 큰 뱀이 쫓아다니며 방해했다. 오체를 각각 장사지내 오릉(五陵)으로 만들고 사릉(蛇陵)이라 했다. 담엄사 북릉이 바로 이것이다. 태자 남해왕이 왕위를 계승했다.

2대 남해왕. 남해왕만을 차차웅이라고 불렀다. 전한(前漢) 평제(平帝) 원시(元始) 4년 갑자에 즉위하여, 나라를 다스린 지 21년인 지황(地皇) 4년 갑신에 죽었다.

3대 노례왕. 육부(六部)의 이름을 고쳐 정하고 여섯 성(性)을 하사했다. 처음으로 쟁기와 보습과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와 수레를 만들었다. 건무(建武)16년 이서국을 정벌하여 멸망시켰다. 이 해에 고구려 군사가 침범해왔다.
삼국유사 권1. 기이제1(紀異第一) 편에는 5대 파사왕 부터 기록은 없다. 석(昔)씨 성(性) 시조(始祖)인 4대 석탈해(昔脫解)왕까지 차례 순서는 그친다.

【동경잡기】 능묘(陵墓)
혁거세릉(赫居世陵). 세상에서 전하기를 담엄사의 곁에 있다. 관가에서 개간(開墾)이나 벌목(伐木)을 금하고 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혁거세왕이 하늘에 올라간 지 7일 후에 오체가 땅에 떨어져 흩어졌다. 나라 사람들이 합쳐서 장사하려 하였으나, 요괴한 뱀의 장난으로 인하여 각각 장사하고 드디어 오릉이라 하였다” 한다. 사릉이라고도 한다.

『경상도속찬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능묘조에서 오릉내의 다른 왕들에 대한 언급 없이 혁거세왕릉만 기록되었다.

오릉의 능역이 6기의 고분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피장자들의 재위기간이 1~2세기 초의 목관묘 시기임을 볼 때, 오능과 직접 관련짓기는 학자들 사이 논쟁의 여지가 분분하다. 봉분의 내부구조를 4세기말~6세기 초 마립간대 신라왕경주변 평지에 분포된 적석목곽분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경주신라문화원 강좌에서 수강했던 전덕재교수는 삼국사기에 19대 눌지마립간 19년 2월 “역대의 능원을 보수하였다.”라는 기록으로 오릉을 그 당시 무덤형식인 돌무지덧널 구조로 보수했을 가능성으로 오릉의 피장자들이 맞는다고 강의했다.

1684년 경주박씨, 1685년 경주김씨 족보가 완성되었다. 능묘 위치를 족보에다 기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신라 왕족의 근본을 찾기 위한 왕릉비정이 무리수를 가하게 되었다. 박씨 김씨일족에 의해 이름 없는 고분들이 왕릉으로 지정되었다.

피장자를 비정하는 과정의 진위여부를 유의건이 제기했다. “왕릉의 피장자 추정은 잘못될 경우 결과적으로 남의 조상을 모시게 되므로 매우 신중해야 함”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영조(1730). 유의건 시문집 『화계집』에 수록된 「나릉진안설(羅陵眞贗說)」이다.

개별 왕릉에 관해서는 피력하지 않았지만 「나릉진안설」은 피장자의 비정이 잘못된 오류를, 검증으로 다룬 까닭에 신라왕릉 연구사에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박민효 『오릉변(五陵辨)』에는 오릉의 개별적 명칭과 피장자의 수에 관심을 표명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삼국유사 기이편이 다르게 기록된 까닭에 오릉내 피장자 문제는 고서(古書)의 기록들을 절충하여, 현재와 같이 혁거세왕릉·알영비릉·남해왕릉·유리왕·파사왕릉으로 결론을 지었다.

신라시조대왕 박혁거세 재위 61년: BC57~서기4년. 알영왕비. 2대 남해왕 재위 21년: 서기 4~24년. 3대 유리왕 재위 34년: 서기24~57년. 5대 파사왕 재위 33년: 서기 80~112년. 매년 봄 가을 신라시조왕 춘향대제와 추향제를 봉행하고 있다.
경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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