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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1)
경주신문 기자 / 1465호입력 : 2020년 11월 26일(목)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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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애 시인,
경북문화관광해설사
가을 끝자락의 들녘이 헐빈하다.
다 내어주고 오히려 넉넉한 어머니의 품처럼 텅 빈 풍광이 처연타.
그 봄날 겹벚꽃 흐드러져 분홍꽃잎 출렁이던 가로수 길이 앙상한 뼈대로 겨울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오릉에서 포석정지로 향하는 신작로는 봄날이면 나이테 굵은 겹벚꽃나무 행렬들로 환상의 꽃길이다.
꽃송이가 탐스러워 왕벚꽂 왕관을 쓴 오래 묵은 벚나무들이 늦가을 햇살에 꼿꼿하다.
돌아올 봄이면 팝콘처럼 팍 터진 연분홍 꽃분홍 꽃잎을 매달 벚나무를 세며 걷다보면 어느새 닿는 포석정지다.

포석정 앞에 말을 세울 때,
침음하며 옛날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하구나.
유상곡수(流觴曲水)에 술잔을 띄우던 터는 아직도 남아 있건만

조선 초기의 문신 서거정(徐居正)의 ‘포정감회(鮑亭感懷)’ 시 한 구절이다. 시인 묵객들로 하여금 유난히 시로 많이 읊어진 포석정지는 사적 제1호로 지정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 돌을 다듬어 포어(鮑魚) 모양으로 만든 까닭에 이름을 포석정이라 하였으며, 유상곡수연을 하던 유적이 완연하다고 서술 되어 있다.

유상곡수연의 기원은 4세기 위진남북조시대 서예가 왕희지에서 비롯되었다. 불계와 유상곡수를 즐기던 곳을 화강석으로 다듬어 물굽이 둘레를 포어(鮑魚)처럼 만들었다. 전복 모양을 닮았다고 전복 포(鮑)자의 포석정(鮑石亭)이다.

유동훈은 포(鮑)자가 고래를 의미하는데, 포석정은 인수구·배수구를 포함한 모양이 고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였다.

포석정은 전복 모양의 유배거를 갖췄지만, 출토된 기와에서 포석(砲石)이라 새겨진 것에는 의문이 남는다.

강우방은 여성의 상징으로 보았다.

홍사준은 포어형(鮑魚形)으로 된 그 자체가 마치 여성의 포궁(胞宮)을 연상하게 되고, 거북의 입에서 물을 토하게 하였다는 귀두(龜頭)를 생각할 적에 포궁을 여근, 귀두는 남근이 되어서 음양의 이치(理致)를 유상곡수연에다가 적용시켰다.

정동호는 석구 안쪽의 12개 바깥쪽의 24개 석재가 각각 12개월과 24절기를 나타낸다 하였다.

윤국병은 신라시대 이궁의 정원 안에 있었던 유상곡수연 유적으로 보았다.

정재훈은 정자가 있었고 그 옆에 유상곡수연을 하던 석구가 있다. 그리고 정자에 오르던 섬돌 1개가 남아 있다. 이 섬돌은 당수나무 앞에 놓여 있는 돌이다.

류석우는 석구(石溝)의 윗머리 물 받는 석함(石函) 위에는 옛적 돌거북이 있어서 그 입으로 물이 나와 떨어지게 하였는데, 조선 말기에 어느 부윤이 가져가 지금도 그 정원에서 아무 의미 없이 엎드려 있다고 하였다.

진홍섭은 1871년~1873년 사이에 경북 안동으로 옮겨졌다고 하나 지금은 그 소재를 알지 못 한다고 하였다.

남산의 윤을곡, 부흥곡, 기암곡에서 흐르는 물이 서로 만나 합수한 포석계곡에 위치한 포석정이다. 신라시대 유상곡수연을 베풀던 유배거(流盃渠) 터가 역사의 심중을 아우르고 있다. 화강석을 다듬어 설치한 전복 모양의 수조 도랑은, 천년세월 풍파를 겪으면서 일그러진 것을 1915년 보수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제2권, 기이편 처용랑·망해사조
(헌강)왕이 포석정에 갔을 때 남산의 신이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좌우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왕의 눈에만 보였다. 사람이 나타나 앞에서 춤을 추니 왕 자신도 춤을 추면서 그 형상을 나타내 보였다. 신(神)의 이름을 상심(祥審)이라고도 하였으므로, 지금까지 나라 사람들은 이 춤을 전하여 어무상심(御舞祥審) 또는 어무산신(御舞山神)이라 한다. 혹은 말하기를 신이 이미 나와서 춤을 추자 그 모습을 살폈다가 공인(工人)에게 명하여 이를 새기게 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보였으므로 상심이라 했다 한다. 혹은 상염무(霜髥舞)라고도 하니, 이것은 그 형상에 따라서 이름을 지은 것이다.
헌강왕이 금강령(金剛嶺)에 갔을 때와 북악(北岳)에 갔을 때도 산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이를 옥도검(玉刀鈐)이라 했다. 즉 지신과 산신은 장차 나라가 망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를 경계한 것이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상서(祥瑞)가 나타났다고 하여 술과 여색을 더욱 즐긴 까닭에 마침내 나라가 망하였다고 한다.

그해 누런 나뭇잎 서풍에 흩날릴 때
구슬피리 소리 쇠잔하니 왕기(王氣)도 끝났도다.
1천년이 흘러간 후 시장과 조정이 텅 비었구나
포석정 무너진 곳에는 가을 잡초 푸르렀고
우뚝한 첨성대는 석양이 붉게 타누나.
옛 자취 완연한데 사람은 다 갔으니
난간에 기대어 말없이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네.
최숙정(崔淑精)
경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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