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겠지예
장옥관
아내와 딸 돈 긁고 마음 모아 열어놓은 가게 열흘이 가도 한 달이 가도 고요하기만 한 가게
오늘 아침엔 셔터 올리자마자 사람 그림자 비쳐 얼른 고개 들어보니 남루한 한 사내
“미안하지만, 돈 천원 줄 수 없어예?” 나도 몰래 버럭 성질내며 “돈이 어딨능교, 며칠째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대지 않구만” 그 사내, 참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지예, 안 되겠지예……” 하며 군말 없이 돌아서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정신 번쩍 들어 ‘미안하지만……’ 그 한마디 온종일 맘에 맴돌며 자꾸 부풀어 오르니 고작 천원에 바닥난 내 밑천 축축한 마음 조금이라도 말려볼 요량에 흰 종이 위에 이따위 얼룩을 남겨본다네
-‘안 되겠지예’에서 번져난 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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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진은 시인 | 지구상에 연일 수십만의 감염자를 내며, 죽음의 위협을 동반하며 곳곳을 스쳐가고 있는 ‘코비드-19’가 10개월이 지나도록 멈출 줄 모르고 기세를 떨치고 있다. 우리 사회는 확실히 ‘탈근대’를 넘어 ‘코비드 시대’로 넘어왔고, 세계는 코비드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누어질 것이라 예언한다. 코비드가 우리에게 던져준 위협은 지구의 운명이 개인의 운명과 내밀하게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녹아가는 빙하와 사막화,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바다와 매연으로 뒤덮인 하늘. ‘바깥’의 일이 이제 ‘자신’의 일이 되었다. 더 문제인 것은 코비드를 야기한 주체도 아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서민들의 삶을 쪼그라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열흘이 가도 한 달이 가도 사람의 발길이 뚝 끊긴 가게의 모습은 우리를 비참하게 한다. 이 시는 그것을 깨는 연민과 쓸쓸한 웃음이 있다. 바로 걸인으로 짐작되는 남루한 한 사내의 모습, 그리고 그가 던진 “그렇지예, 안 되겠지예……”라는 말 때문이다. 그 웃음이 사실 우리를 더 쓸쓸하게 한다.
그러나 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시인의 자의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이라고 정중하게 말을 꺼낸 그에게 “버럭 성질을 내며” 쏘아붙인 자신에 대한 자책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내와 딸”이 “돈 긁고 마음 모아 열어놓은 가게”에 우연히 비친 사람 그림자가 돈 얻으러 온 사내라니, 화가 날 만도 하다. 그러나 코비드 시대엔 이런 사내를 더 황폐하게 하는 법. 그러니 ‘미안하지만……’이라는 이 한마디가 “온종일 맘에 맴돌며 자꾸 부풀어 오”를 수밖에. “고작 천원에” 밑천이 바닥나버린 시인은 참혹할 정도로 비참해진다. 가슴을 쥐어뜯어도 더욱 마음은 젖어들고 “그 축축한 마음 조금이라도 말려볼 요량에” 시인은 “흰 종이 위에 이따위 얼룩”이라고 명명하는 시라도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메타시, 즉 시 쓰기 과정으로서의 시이지만, 코로나라는 사태가 야기한 산물이라는 점이 더욱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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