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과 만엽의 바다
경주신문 기자 / 1467호 입력 : 2020년 12월 10일(목)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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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회 국제향가학회 회장 -저서 : 천년향가의 비밀 -논문 : 신라향가 창작법 제시와 만엽집의 의미 |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1926년 스물 아홉의 나이로 사랑하던 사람과 함께 검은 현해탄에 몸을 던져 정사했던 윤심덕이라는 여인이 취입했던 ‘사(死)의 찬미’라는 노래 가사 부분이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다. 그녀가 남긴 노래 ‘사의 찬미’는 오늘까지도 살아남아 사랑을 앓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다. 두산백과는 현해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해탄은 우리나라와 일본 열도의 규슈 사이에 있는 해협이다. 가장 좁은 곳의 너비는 50km 정도이다. 중앙에 대마도가 있으며, 예로부터 한일 간의 해상 연락로로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두산백과의 설명에는 앙꼬가 빠졌다. 사람을 말하며 눈이 크고 키가 중간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일 두 민족의 가슴 속을 흐르는 애환의 바다라고 설명하는 것이 앙꼬다.
만엽의 시대를 살았던 고대인들은 목숨을 살피지 않고 이곳을 넘나들었다. 가고나면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그들은 돛단배에 몸을 실었다. 멍이 든 가슴처럼 검은 현해탄에는 이별노래와 다시 못 볼 이들의 눈물노래가 그치지 않고 흘렀다.
만엽집에는 멍든 현해탄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위태한 바다를 건너려는 이들에게는 의지할 무엇인가가 필요하였다. 그것이 만엽가였다. 천지신명을 감동시켜 소원을 이루어 주는 힘을 가진 노래였기 때문이다. 만엽이 가진 힘에 의지해 검은 바다를 넘고자 했던 것이다. 현해탄과 관계되는 작품 몇을 소개하고자 한다.
신라가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축출하고 삼국을 통일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서기 702년의 작품이다. 일본국은 삼야련(三野連)이라는 이를 당나라에 대사로 파견하였다. 춘일장수로(春日藏首老)라는 만엽가인이 작품을 만들어 주며, 천리 현해탄을 무사히 왕래할 수 있기를 빌었다. 그 날의 작품이 62번가이다. 원문은 18글자 뿐이다.
“在根良對馬乃渡渡中尒幣取向而早還許年”
이 작품 18글자에 신라향가 창작법을 들이대면 “그대께서 대마도에 물을 건너가심이라. 물 건너 가는 중에 돈을 취해 서둘러 돌아오시라”라는 금물이 녹아 나온다. 읽다가 혼자서 웃음을 터뜨렸다. 절박한 순간에도 ‘돈벌어 바로 돌아오라’고 당부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인들이 오늘의 일본을 얕잡아 볼 때 ‘경제동물’이라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해탄의 배삯이 얼마나 비쌌으면 돈생각부터 했을까. 일본인들에게 현해탄은 돈의 바다였을지도 모른다.
당나라 대사 삼야련(三野連)은 임무를 마치고 2년 후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현해탄의 높은 파도를 제압해 주었던 것은 만엽이 가진 힘이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랬기에 그들은 계속해서 만엽을 만들었던 것이다. 현해탄에는 그들이 뿌린 이별의 슬픈 노래와 해후의 기쁜 노래가 불려졌다. 또 하나의 만엽가를 더 소개하겠다. 서기 750년 작품이다. 앞의 작품이 만들어진 후 강산이 5번이나 바뀐 뒤다. 등원청하(藤原淸河)라는 이가 당나라 대사로 파견되었다. 이번의 만엽가인은 그의 고모 등원(藤原) 태후였다. 고모가 태후였으니 등원청하(藤原淸河)는 권력의 길을 걷고 있었다.
앞의 작품은 18글자인 반면 이번 4240번가는 21글자다. 글자 수가 서로 다르다. 만엽가는 정형시가 아님을 간단히 알 수 있다.
“大舶尒真梶繁貫借吾子乎韓國邊遣伊波敞神多智”
“큰 배에 돛대가 여러 개구나. 돈 꾸러미를 꾸어 나의 자식을 한국 바닷가로 보내니 너희들은 바다의 파도에 마음을 쏟고, 신은 지모를 다해(나의 조카가 무사히 다녀오도록 해)라”
이번 작품에도 돈이 언급되고 있다. 돈을 꾸어 조카의 여비에 쓰라고 보태주었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이러했던 고모의 애틋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청하(淸河)는 당나라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현해탄은 고모찬스도 소용없었다. 권력자라고 해서 봐주는 바다가 아니었다. 현해탄에는 소금보다 더 짠 황후의 눈물노래가 더해졌다. 이들의 눈물이 더해져 현해탄은 마르려야 마를 수가 없었다.
현해탄의 애환은 고대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1972년 가왕 조용필이 대형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러 그의 등장을 세상에 알렸다. 가사를 뜯어 보면 이 역시 현해탄의 노래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재일동포들을 향한 이 노래를 1983년 아쓰미지로(渥美二郞)라는 일본인 가수가 리메이크 하였다. 또 일본 엔카의 여왕인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와 대만 가수 등려군(鄧麗君)도 일본어로 이 노래를 불렀다. 트롯은 만엽가처럼 동북아의 노래였다.
최근 트롯이 다시 돌아와 우리를 적셔주고 있다. 고대인들의 노래였던 만엽은 현대의 트롯일거라는 느낌을 받는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현해탄에는 만엽과 트롯이 흘러 검은 바다가 되었다. 현해탄은 만엽이 흐르는 바다였고, 트롯이 울리는 해협이다. 현해탄은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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