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공주가 왔다
경주신문 기자 / 1468호 입력 : 2020년 12월 17일(목)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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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회 국제향가학회 회장 -저서 : 천년향가의 비밀 -논문 : 신라향가 창작법 제시와 만엽집의 의미 | 지난해 10월 경주 문화재 연구소는 경주 황오동 쪽샘지구 44호분 발굴 조사에서 신라시대 행렬도가 그려진 토기 조각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토기 조각은 호석(무덤 둘레에 쌓는 돌) 북쪽 바깥에서 부서져 있는 채로 발견됐다.
그림은 칸을 구획하여 4단으로 그려져 있었다. 맨위 1, 2단에는 규칙적으로 문양이 그려져 있고, 3단에는 여러 인물과 동물이 등장하고 있다. 아래 4단에도 기하학적 문양이 반복되어 있다. 이들 그림에 대해 여러 연구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주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행렬의 제일 뒤 쪽에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그림의 주인공이다. 맨 앞에 기마 행렬이 있고, 그 뒤에 세 사람이 춤을 추고 있다. 활을 들고 있는 사람 둘은 동물을 사냥하고 있다. 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영혼을 인도하고 무덤을 지키는 개다. 춤을 추고, 수렵하는 그림의 구성이 고구려 고분벽화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들 의견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의문점이 있었다. 향가와 만엽가 연구자인 필자가 보기로 행렬도는 향가와 만엽시대 사람들의 저승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불교가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자리잡기 전 그 시대를 살던 고대인들의 토착 문화에 의한 장례 행사를 그리고 있었다. 앞에 제시된 의견에는 이런 점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었다.
그림 위쪽 1,2단에 그려진 기하학적 문양은 밤하늘의 별이었고, 맨 아래 4단째 다이아몬드꼴 문양은 바다의 파도를 그린 것이다. 3단의 맨 앞에는 말을 탄 장수가 길을 열고 있다. 이들은 고대인들이 생각하는 저승사자이다. 현대의 우리가 알고 있는 저승사자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특히 만엽집에는 저승사자가 예외 없이 장수(將)라는 문자로 표기되어 있었다. 두 명 이상의 저승사자가 인간의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갔었다. 이들을 호위하는 기마무사들로 볼 수도 있겠으나, 만엽가는 확고하게 장수(將)를 저승사자라 하고 있다. 그 뒤에 줄지어 선 남녀 3명의 그림을 연구자들은 춤추는 모습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춤추는 것이 아니라, 노 젓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남자 2명, 여자 1명으로 이루어진 뱃사공 팀이다. 고대에는 여자도 배를 저었음을 알 수 있다. 향가와 만엽에는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애(乃, 노젓는 소리 애)’라는 글자가 나와 이 그림이 노를 젓고 있는 모습임을 증명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명백하다. 한 사람이 밤에 사망하였다. 저승 사자 두 명이 그를 데리러 왔다. 밤 하늘에는 많은 별들이 빛나고, 바다에는 파도가 잔잔하였다. 망인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저승으로 출발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바다 건너 저승으로 간다는 고대인들의 믿음이 토기 그림의 배경이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 경주땅 고대인들은 이렇게 믿고 살았다.
뱃사공들 뒤에 두 명의 궁사가 나와 활을 쏘고 있다. 행렬의 앞쪽이 아니라 뒤를 겨누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그들이 겨누고 있는 대상은 사슴이다. 향가와 만엽에서 활은 수렵이 아니라 ‘목표가 바로 저것’이라고 가리키는(指, 가리키다 지) 기능을 하고 있었다. 살상을 위한 동작이 전혀 아니었다. 이러한 동작을 문자로 고정하였는데 향가에서는 ‘의(矣, 화살로 맞추다 의)’, 만엽에서는 '호(弖, 활 소리 호)’라는 글자였다.
본 그림의 하이라이트, 주인공은 사슴이다. 사슴은 제위(帝位)를 비유한다. 만엽에서는 천황이거나 천황의 아들 딸들이 사슴으로 비유된다. 이렇게 귀한 신분의 사슴을 향해 궁수 두 명이 활을 겨누고 있다. 천지 귀신에게 ‘저승으로 가는 분이 바로 저기 사슴’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주인공인 제위(帝位)가 있는 방향으로 살상을 목적으로 활을 겨눈다는 것은 일단은 상상하기 어렵다.
활 쏘는 두 사람 아래 또 하나의 기하학적 무늬가 있다. 필자는 이를 만장으로 본다. 만엽을 보면 상당수의 작품에 붉은 색의 만장이 죽음의 표지어로 등장하고 있다. 만장이 긴 막대에 이삭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에 착안하였는지 이삭(穗, 이삭 수)이라는 글자로 은유하고 있었다.
사슴의 주변에 개와 뱀 닮은 동물 그림이 있다. 만엽에서는 주인공이 개들을 데리고 다니고 있다. 그 개는 갈(獦, 주둥이가 짧은 개 갈)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망인이 여러 마리의 개를 데리고 저승길에 나서고 있다. 명백히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뱀 닮은 동물은 뱀으로 보기에는 크기가 너무 크다. 그래서 용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신라향가 헌화가와 처용가의 배경설화에 동해용이 나오고 있다. 용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조금 더 많은 사례발굴이 필요하다.
맨 뒤에 기마무사도 일행을 호위하고 있다. 이 장수 역시 저승사자다. 말은 신라향가 처용가에도 나온다. 물론 아직 파악하지 못한 의미가 다수 있다. 행렬도는 그림으로 그려놓은 향가와 만엽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필자는 여기까지 나간 다음 일시 멈추어야 했다. 행렬도 그림과 쪽샘지구 현장에 서로 충돌하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쪽샘 지구에는 4~6세기 무렵 신라귀족 무덤 800여기가 모여 있는 곳이다. 44호분은 왕릉이 아니고 자그마한 귀족 무덤으로 보았다. 그러나 거기에서 발굴된 행렬도의 주인공은 사슴이었다. 사슴은 제위를 비유하는 동물이다. 만엽에서는 천황이나, 황자, 황녀를 뜻하고 있었다. 매장된 이가 최소한 왕자나 공주로서, 신라 왕실과 혈연 관계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행렬도 그림 내용과 한 단계 아래인 귀족급 인물들의 무덤이라는 쪽샘지구 현장이 서로 부딪힌 것이다.
레고(Rego)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단 하나의 조각에서라도 불일치가 나온다면 전체 결과는 맞을 수가 없다. 미해결의 장으로 남겨 두어야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지난 한 해 코로나19로 남녘땅 경주까지도 숨을 죽여야 했다. 그러나 쪽샘지구 발굴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2020년 12월 7일 44호분에 대한 온라인 설명회가 있었다. 목 빠져라 기다리던 행사였다.
경주 문화재 연구소 연구원들의 한 마디 말과 한 가지 몸짓까지도 주목을 받았다. 무덤에서는 금동관, 귀걸이, 바둑알, 돌절구 등 귀중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비단벌레 날개로 제작된 금동장식 수십 점이 관심을 모았다. 최상층의 무덤에서만 확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소측은 유물들로 미루어 보아 44호분은 신라 최상층의 무덤이고, 매장된 이는 10대의 여인으로 보았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님께서도 피장자의 신분이 공주일 것 같다고 했다.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최고위층의 여인, 그녀가 공주였다면 필자가 서있던 막다른 길에 출구가 될 수 있다. 발굴 결과는 왕의 혈족이어야 한다는 행렬도의 사슴그림이 의미하는 신분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었다. 행렬도는 수렵도가 아니라, ‘장례행렬도’였다. 그렇다면 장례행사에 신라를 대표하는 불교적 색채가 왜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을까.
행렬도에는 망인의 영혼이 저승사자의 안내를 받아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저승에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는 배를 타고 고해의 바다를 건너 아미타불 극락으로 간다는 불교적 세계관은 토기의 행렬도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다. 신라의 불교 공인은 527년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이루어졌다. 공인 이후라면 왕실 사람들은 당연히 솔선수범하였을 것이고, 그렇다면 장례의식을 그린 이 그림에 불교적 색채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문화재 연구소측이 밝힌 44호분은 5세기 후반(450~500)에 축조되었다는 연구결과가 답을 주었다.
행렬도는 향가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신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 토착 신앙에 따른 장례행사 모습이었다. 450년에서부터 불교가 공인된 527년 사이에 죽은 공주의 장례식 그림이었을 것이다. 경주문화재 연구소의 축조시기 분석은 서기 450년에서 500년 사이로 시간적 범위를 더 좁혀 준다. 재위년도로 미루어 그녀의 아버지를 추적해보면 자비 마립간(458~479)과 소지 마립간(479~500)으로 압축된다. 그들이 5세기 후반에 재위했던 왕이다.
“피장자 신장은 150㎝ 전후로 추정되는 데다 금동관, 귀걸이, 팔찌 등 장신구의 크기가 전반적으로 작아 10대 공주의 무덤일 가능성이 큽니다. 150㎝라는 키가 갖는 상징성보다 부장품의 크기가 전반적으로 작은 것을 보고 이렇게 추정했습니다”
국립경주 문화재 연구소 심현철 연구원이 온라인을 통해 발표한 내용이 귀에 쟁쟁 울려온다. 10대의 소녀공주는 누구일까. 이번 주말 쪽샘에 가 그녀를 만나볼까 한다.
공주는 긴 세월동안 매일 아침 황오동 쪽샘에 와 쪽빛 하늘 빛보다 더 푸른 샘물을 마시고 있었다. 공주가 우리에게 왔다. 사슴공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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