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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털기
경주신문 기자 / 1415호입력 : 2019년 11월 21일(목)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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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털기


                                                                    고진하


은행을 털기 위해서는 복면과 총 따위가 필요하지만
은행을 털기 위해 그는
모자와
고무장갑과
비닐 깔개를 준비했다.

나무를 잘 타는 그는
다람쥐처럼 뽀르르 기어올라가
은행을 털었다 우박처럼
은행이 후두두둑 그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은행을 털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한 가마니 빛나는 은행을 얻기 위해
열 가마니 똥물을 뒤집어써야 한다.

(똥물이 된 육질 속에
금화가 숨겨져 있다니!)

구린내는 진동을 하지만
똥물을 뒤집어쓴 그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은행을 다 턴 은행털이가
주르르 나무를 타고 내려오다 털썩 엉덩방아를 찧는다.
황금방석이 얼른 그를 받쳐 준다!



-참 유쾌한 은행털이범

↑↑ 손진은 시인
샛노란 은행잎이 바야흐로 절정이다. 저마다 은행나무 그 노란 우산 깃 아래에서 셀카를 찍는 무리들로 세상이 다 환하다. 이런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한 이 세계는 절망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은행나무는 화석나무라고도 불린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는 나무라 한다. 자웅(雌雄) 이주(異株), 암나무와 수나무가 서로 바라보고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반경 십리 안에 암수가 있다면, 있다는 소문만 들어도 사랑하고 또 부부의 연을 맺는다. 세상 가장 금슬 좋은 부부가 아닌가 한다. 다 바람이라는 중매쟁이 할머니[媒婆] 덕분이다.

또 하나, 은행나무 알은 냄새가 독하다. “앗따 뭘 퍼먹었길래 이렇게 독한고”(손택수, 「은행나무 사리알」) 볼멘소리를 하면서 행인들은 그 아래를 지날 때마다 코를 막는다.

이 시는 그렇게 역한 냄새를 날려버리는 재미를 지니고 있다. 은행(銀杏)과 은행(銀行)의 동음이의어가 이 시를 낳았다. 이 같은 말을 갖고도 이렇게 유쾌한 시를 쓸 수 있다니!

가끔씩 뜨는 은행털이범 기사와 이 시의 은행털이는 얼마나 다른가? 복면과 총 대신 모자와 장갑과 비닐 깔개를 준비하는, 머리 위로 우박처럼 떨어지는 은행을 맞는, 한가마니 은행을 위해 열가마니 똥물을 뒤집어쓰고도 미소가 떠나지 않는, 똥물이 된 육질 속에 마음 속 금화를 간직한 이 즐거운 털이범을 보는가? “나무를 타고 내려오다 털썩 엉덩방아를 찧는다./황금방석이 얼른 그를 받쳐 준다!”의 유머와 역설에 이르면 그 쾌활은 절정에 이른다. 그렇다. 이런 은행털이라면 마음먹고 한번 날짜를 잡아볼 만하잖은가?
경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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