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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경주신문 기자 / 1436호입력 : 2020년 04월 23일(목)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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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함민복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가난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
↑↑ 손진은 시인.
“가난은 인간을 낡게 한다”는 말이 화제다. 가난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부식시킨다. 그 풍화의 속도만큼이나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가난 때문에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사람도 있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가난을 찬양할 수 없다. 적어도 가난은 우리를 남루하게 한다. 그러나 때로 가난은 우리를 진실한 삶과 사랑도 만나게 해준다. 가진 것이 없기에 그 사랑은 더 애틋하고 애절하고 참되다. 그런 사랑이 더 빛나는 법이다.

이 시에서 드러나는 가난한 삶은 두 개의 에피소드를 갖는다. 내 만학을 위해 전세에서 사글세로 이사를 하는 형님과 시장 골목의 짜장면집 부부의 일화다.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을 보며 가슴이 한참 덜컹거린 이유는 형님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가난 속에서 자신을 내어주는 형으로 인해 마음은 한없이 착잡하다. 이 우울한 시의 분위기는 14행부터 아연 반전된다.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면서부터다. 자신은 가난에 대한 착잡한 심정을 느끼는데, 그들은 가난하지만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들은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한다.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답다. 공감은 눈물을 부른다.

가난하지만 빛나는 그들에게 미안하여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김없이 먹는다. 때로는 짜장면뿐만 아니라 우리는 “슬픔도 배”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 슬픔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물론 가난 자체가 아름답지는 않다. 그러나 가난해도 아름다운 사람은 있는 법이다.
경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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