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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참 좋은 여름밤에
경주신문 기자 / 1450호입력 : 2020년 07월 31일(금)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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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참 좋은 여름밤에


                                                                 박형준


들일을 하고 식구들 저녁밥을 해주느라
어머니의 여름밤은 늘 땀에 젖어 있었다
한밤중 나를 깨워
어린 내 손을 몰래 붙잡고
등목을 청하던 어머니,
물을 한 바가지 끼얹을 때마다
개미들이 금방이라도 부화할 것 같은
까맣게 탄 등에
달빛이 흩어지고 있었다
우물가에서 펌프질을 하며
어머니의 등에 기어다니는
반짝이는 개미들을
한마리씩 한마리씩 물로 씻어내던 한여름 밤
식구들에게 한번도 약한 모습 보이지 않던
어머니는 달빛이 참 좋구나
막내 손이 약손이구나 하며
시원하게, 수줍게 웃음을 터뜨리셨다


-한여름 밤의 반짝이는 개미
↑↑ 손진은 시인
박형준의 신작 시집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을 여러 날에 걸쳐 취할 때까지 읽었다. 좋은 시가 참 많았다.

시인에게는 “이슬방울 집/작은 방 불빛”(「우리가 아직 물방울 속에서 살던 때」) 속에 들어앉아 있던 ‘숨은 소년’ 시절이 있었다. “생땅을 갈아엎은 듯한/비에서 풍기는 흙내음”(「비의 향기」)을 맡던, “형의 반바지에 숨겨둔 동전을 훔쳐다/논바닥에 던져놓”(「아기 별자리」)던 개구쟁이 시절, “마을 아낙들과 함께 저 먼 전라도 작은 섬으로 통통배를 타고 고춧가루 장사 나가셔서 갖고 오신 미제 라디오”를 “볼륨을 다 올려도 웃고만 계시던 어머니 품속의 날들”(「돛이 어디로 떠나갈지 상상하던 날들」) 말이다.
그 향수와 그리움의 밑바닥에는 어머니가 존재한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는 막막하고 고단한 어머니 등목을 해주던 추억에서 나왔다. 막내인 소년은 “식구들에게 한번도 약한 모습 보이지 않던” 어머니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던 존재였다. 그것은 “늘 땀에 젖어 있었”던 어머니가 모두가 곯아떨어진 한밤중을 기다려 “어린 내 손을 몰래 붙잡고/등목을 청”했다는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한여름 밤, 흩어지는 달빛 아래서 “물을 한 바가지 꺼얹”거나 “펌프질을 하”는 어머니와 소년만의 이 의식은 매혹적이다. 등목은 노고에 대한 상쾌한 위로이며 물방울 같은 청신한 사랑이다. 그 때 “달빛이 참 좋구나/막내 손이 약손이구나하며” “시원하게, 수줍게 웃음을 터드리”며 피는 어머니는 한 송이 꽃이 된다.

시간의 깊이에서 건져낸 추억 한 대목이 이 여름, 우리에게 청량제가 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바로 한여름 밤의 “반짝이는 개미” 때문이다. 시인은 왜 “달빛이 흩어지”는 “어머니 까맣게 탄 등”을 묘사하면서 “금방이라도 부화할 것 같은” 개미를 떠올렸을까? 등의 검은 색 때문일까? 그것보다는 ‘끈적한 땀’이나 ‘때’를 유머스럽게 표현했다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등에 기어다니는/반짝이는 개미들을/한마리씩 한마리씩 물로 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장마와 무더위로 지친 이 여름날 어린 시절의 집, 추억의 한 페이지를 넘겨보며 견뎌나가자. “장가 밑천으로 어머니가 숨겨놓은 내 칠백만원”이 “시골집 장롱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칠백만원」)는다고 해도 그 시절의 집은 구석구석 매력이 있다. 어린 시절은 그 깊숙한 곳에 언제나 비밀을 감추고 있기에.
경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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