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갠 아침
김우태
비 갠 아침 어머니가 울타리에 빨래를 넌다 간밤 논물 보고 온 아버지의 흙바지며 흰 고무신 천둥번개에도 꿈 잘 꾼 손자녀석 오줌바지 구멍난 양말들이 햇살에 가지런히 널려간다 쪼들리는 살림일수록 빨래감은 많아 젖어 나뒹굴던 낱낱의 잡동사니 가렵고 눅눅했던 이불 속 꿈들이 줄지어 널려가는 울타리에 오이순도 넌출넌출 감겨 오른다 빗물 빠진 마당가엔 풀새들이 눈을 뜨고 지붕 위 제비떼 날개 말리는 비 갠 아침 어머니가 빨래를 넌다 꺾인 팔은 바로 잡고 꼬인 다리는 풀어 주며 해진 목덜미 닳은 팔꿈치 아무리고 다독이면서 새옷보다 깨끗한 빨래를 넌다.
-빨래 널기 속에 비친 어머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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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진은 시인 | 쉰 날 가까이 지속되던 장마가 그쳤는가. 습기를 머금은 햇살이 후덥지근하다. 제방둑이 터지고 급류에 휩쓸려 사람들이 실종되고, 도로가 잠기고, 수마가 할퀴고 간 집이며 가재도구에 이재민들은 한숨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다. 그래도 긴 장마 끝의 햇살이 눅눅한 우리들 마음을 말려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시는 비 그친 아침에 어머니가 울타리에 빨래를 너는 모습을 그린다. 손자녀석과 아버지의 바지, 구멍난 양말이 널리는 것을 보니 넉넉하지 못한 대가족임을 알겠다. 단순하게만 보이는 이 시는 몇 가지 점에서 서정시의 본령을 거느린다.
먼저 살펴볼 것은 인간과 자연의 교감이다. 그 교감은 빨랫줄 역할을 하는 울타리에 “가렵고 눅눅했던/이불 속 꿈들”뿐만이 아니라 “오이순도 넌출넌출 감겨 오”르는 것을 보는 눈을 통해 실현된다. 빨래와 오이순이 같은 생명의 기운을 내밀하게 공존하는 것을 본다. 시인은 거기에 더하여 “빗물빠진 마당가”의 풀새와 날개를 말리는 “지붕 위 제비떼”를 통해 장마의 실감을 더한다.
그러나 이 시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빨래를 너는 어머니의 동작에 있다. “꺾인 팔은 바로 잡고/꼬인 다리는 풀어 주며/해진 목덜미/닳은 팔꿈치/아무리고 다독이”는 빨래 너는 모습은 어느새 모든 식구들을 향한 어머니의 한없는 자애와 사랑의 모습으로 건너뛴다. 그래서 어머니의 손이 닿으면 “새옷보다 깨끗한 빨래”가 되는 경이가 펼쳐지고 우리 마음 속의 비마저 다 개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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