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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식구
경주신문 기자 / 1458호입력 : 2020년 10월 08일(목)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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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식구



                                                                 김우전



가을비 추적추적 안강 장날이었지요 메기입 어물 장수가 때 이른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발길 뜸한 장날 푸념처럼 허연 김 피어오르고 간혹 빗방울이 국물 양 보태는 돼지 국밥

젖은 누렁이 한 마리 칭얼거리듯 얼쩡거렸습니다 복어처럼 부풀어오른 볼 실룩거리며 밥 씹다 말고 물끄러미 쳐다보다 눈길 마주치자 넙치 같은 손으로 입 훔치고는 그릇째 바닥에 내려놓더라구요 비칠비칠 기다시피 누렁이는 다가와 후루룩 쩝쩝 먹기 시작하는데

또 어디선가 중심이 무너진 검둥이 한 마리가 와서는 낑낑거리자 누렁인 가만히 머리를 비켜주는 것이었습니다 두 놈의 젖은 몸을 풋가을비는 더 젖게 하고 그들이 허겁지겁 허기 채워 가는 동안 그릇은 제 몸 안의 것을 조금씩 비워주었지요

나는 바다가 저장된 고등어 한손 샀습니다 사내가 건넨 고등어가 지느러미 날개로 날아오는 낮은 허공 아래에서 머리 맞댄 두 마린 그릇에 달라붙은 마지막 냄새까지 설거지하듯 핥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무릎 밑의 두 마릴 푸르고 잔잔한 바다 같은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으로 검둥이의 뒷다리를 슬쩍 받쳐주는 것 같기도 했답니다 눈에선 금세라도 짠 바닷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았지요



-가을 장터에서 보는 애잔한 식구 이야기
↑↑ 손진은 시인
눈에 삼삼히 밟히는 시다. 가을이라는 계절에 읽으니 더 애잔하다. ‘메기입 어물 장수’는 흔히 볼 수 있는 노전 어물전 가게의 주인인데 아마 볼이 동그랗고 입이 넉넉한 어른일 게다.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날 그가 때 이른 점심으로 빗방울이 국물을 보태는 돼지 국밥을 먹고 있는데, 젖은 누렁이 한 마리가 얼쩡거리는 게 아닌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애잔한 눈길이 “비칠비칠 기다시피 다가”오는 누렁이에게 먹던 음식을 그릇째 바닥에 내려놓게 한다. “후루룩 쩝쩝 먹기 시작하는 누렁이.” 여기에 먹는 입이 하나 더 등장한다. “중심이 무너진 검둥이 한 마리”. 이번에는 누렁이가 머리를 비켜 주어 둘은 같이 허겁지겁 먹어댄다. 시인의 눈은 여기서 “그들이 허겁지겁 허기 채워 가는 동안 그릇은 제 몸 안의 것을 조금씩 비워주었지요”라고 묘사한다. 우리는 어물장수, 누렁이, 검둥이에 더하여 그릇까지 한 식구가 되는 체험을 한다. 인간과 동물과 기물들은 이들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보는 이의 영혼을 뭉클하게 한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이 발 디딘 곳이 “사내가 건넨 고등어가 지느러미 날개로 날아오는 낮은 허공”이 되는 실감의 순간을 사는구나.

“무릎 밑의 두 마릴 푸르고 잔잔한 바다 같은 눈으로 쳐다보는” 사내는 성별에 관계 없이 한없이 자애로운 대양(大洋)의 모성을 가졌다. 그러기에 “마음으로 검둥이의 뒷다리를 슬쩍 받쳐주는” 게 보일 수 있고, 무엇보다 “눈에선 금세라도 짠 바닷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을 수 있는 거다.

그러고 보니 어물 장수 사내는 “메기입”, “복어처럼 부풀어오른 볼”, “넙치 같은 손”, “푸르고 잔잔한 바다 같은 눈” 같이 온통 바다의 속성을 띤 신체를 가졌구나. 다분히 시인의 의도성이 드러난 표현이겠지만 추적추적 가을비 속의 바다는 이 시를 보는 이들의 마음에도 애린의 ‘짠 바닷물’이 일렁이게 한다. 마지막으로 더 보태고 싶은 한 마디. ‘사내는 다른 식구가 없는 걸까.’ 시인이 드러내지 않았으니 우리는 떠돌이 개들을 식구로 품어 안고 산다고 읽을 수밖에 없다.
경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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