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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삯으로 감 껍질을 받다
경주신문 기자 / 1460호입력 : 2020년 10월 22일(목)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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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삯으로 감 껍질을 받다


                                                       하청호


어머니는 감 껍질이 가득한 등짐을 지고
늦은 밤에 돌아왔네
하루 종일 감을 깎은 품삯으로 껍질을
받아왔네, 입에 단내가 나는 힘든 품의 대가였네
어머니는 속살을 내어준 붉은 감 껍질을
안쓰러운 가을볕을 깔고 마당에 널었네
그래도 껍질에 남은 단내가 마당에 가득하네
그해 겨울,
창밖에 흰 눈이 고봉으로 쌓이는데
우리는 쫀득한 감 껍질로 긴긴 겨울의 허기를 채웠네
어머니의 고단한 사랑을 질겅질겅 씹었네

말린 감 껍질을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네
텔레비전에선 붉은 감 껍질이 좋은 먹거리라고
참 물색없이 얘기하네



-감 껍질, 어머니 고단한 사랑의 단내
↑↑ 손진은 시인
저 2-30년대 식민지 시절 윤복진의 「기러기」나 이원수의 「찔레꽃」에서부터 일하러 가신 어머니는 나온다. “울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혹은 “엄마 일 가는 길에 피는 찔레꽃”에 나오는 그 때 어머니는 공장 일을 하러 가신 것이 아니라 품삯을 벌러 가신 것일 게다. 그분들은 가사며 양육도 해야 하시는 고단한 생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아이들도 밤늦도록 돌아오시지 않은 어머니를 기다리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오늘 살펴볼 작품도 이들 동요의 정서 연장선상에 있는 시다. 아마 해방이 되고 전쟁도 끝난 50년대쯤이었을 것이다. 시적 화자는 어릴 적 감 깎으러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 눈이 빠지도록 기다린, 늦은 밤에야 돌아오신 어머니의 등짐 속에는 감 껍질만 가득하다. 당장 먹을 수도 없는 그 껍질. 3행에서 시인이 “껍질을”이라고 쓰고 한 줄을 건너 뛰어 “받아왔네, 입에 단내가 나는 힘든 품의 대가였네”라 한숨처럼 길게 쓴 것은 입에 단내가 나도록 힘들게 일한 대가가 돈도 아니고, 감도 아니고, 기껏 “속살을 내어준 감 껍질” 밖에 안 된다는 뜻, 기가 막힌다는 뜻이리라. 감 껍질은 속살이 되지 못하고, 알맹이가 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우리네 한 사람 한 사람의 객관적 상관물도 된다. 그러나 그 삶을 안쓰러워하는 ‘가을볕’ 때문에 “껍질에 남은 단내가 마당에 가득하”다. 하늘조차도 우리 삶을 위무하는 것이다.

그 감 껍질을 식구들은 온 겨우내 먹는다. “고봉으로 쌓이는” 흰 눈은 고봉으로 된 흰밥을 먹고 싶은 아이의 간절한 바람이다. 그러나 식구들은 “쫀득한 감 껍질”의 단내로 “긴긴 겨울의 허기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감 껍질의 단내는 씹을 때마다 울컥하는 어머니의 고단한 사랑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시에 쓰인 두 ‘단내’를 본다. “입에 나는 단내”와 “껍질에 남은 단내”다. 이렇게도 볼 수 있겠다. 어머니는 숨이 차도록 일한 결과로 입 안에서 나는 ‘단내’를 햇볕과도 잘 어울리는 단 냄새로 바꾸는 분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식구들 뼛속까지 스민 허기는 달랠 순 없다는 것.

시절은 많이 흘렀다. 이제 시인도 그때 어머니의 나이를 지나왔다. 그래도 아직 그 때 감 껍질의 기억은, 어머니의 기억은 몸에 남아 “말린 감 껍질을 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음식은 몸의 기억을 소환한다. 그래서 언론에서 “감 껍질이 좋은 먹거리”라고 하는 이야기에, 시인은 “참 물색없다”고 반응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감 수확이 한창인 계절이다. 한 상자씩 사서 막 깎아먹고 곶감도 만드는 감에 이런 사연이 깃들어 있다니,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가지 끝에 매달린 붉은 감을 보는 마음이 예사롭지 않다.
경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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