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사회
경주 원동마을, 호랑이 때려잡은 부인들 이야기
경주신문 기자 / 1465호입력 : 2020년 11월 26일(목) 14:32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 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장
경주 외동읍 영지(影池)에서 남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조선시대에 세워진 원사(院舍)가 있었다 하여 원동(院洞)이라 불리는 마을이 나온다. 이곳은 200여년 전통의 남양홍씨와 여강이씨 집성촌이 원골못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필자는 가을날이면 혼자서 시골길을 유유자적하며 경주학의 묘미를 배운다. 가끔은 허물어져 가는 비각(碑閣)과 외롭게 자리한 문화재 등을 종종 접하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이번에는 경주시 외동읍 방어리를 지나며 남양홍씨세천(南陽洪氏世阡)을 마주하고, 비각 안으로 들어가 지난 역사의 흔적을 더듬었다.

정렬각(㫌㤠閣) 내부에는 중심부에 비석이 자리하고, 병술년 지은 오천 정헌교(鄭獻敎)의 기문(記文)과 상량문, 정렬각, 1729년 정려 받은 [열녀 홍계발 전처 김씨지려(金氏之閭)]와 [열녀 홍계발 후처 정씨지려(丁氏之閭)] 등 5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마을 전설에 “김씨와 정씨 두 아내를 둔 홍계발은 어느 날 방 안에서 자고, 두 아내는 길쌈을 하고 있었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남편을 해치려 하자, 김씨는 홑이불로 호랑이를 덮어씌우고, 정씨는 방망이로 호랑이를 때려잡아 남편을 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필자는 급히 정렬각 안으로 들어가 비석의 글을 찬찬히 다시 살펴 읽었다. 비석에는 두 부인이 마당에 나타난 호랑이를 보고 급히 이불로 호랑이를 덮었고, 한 명은 부엌칼로 호랑이를 찌르고, 한 명은 절굿공이로 호랑이를 내리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을에서 전하는 사실과 조금 달랐다.

호랑이가 민가에 나타난 사실도 놀라운데 여자로서 맹수를 상대해 남편을 구해낸 그 용기는 참으로 표창되어 마땅하기에, 나라로부터 정려를 받았다. 홍계발의 부인 월성김씨와 나주정씨가 사나운 호랑이로부터 위기에서 남편을 구한 것은 부덕(婦德)을 갖춘 현모양처(賢母良妻)였기에 가능하였다.

부덕에 대해서 『명심보감』「부행편(婦行篇)」에 “여자가 네 가지 아름다움이 있으니, 첫째는 부인의 덕, 둘째는 부인의 용모, 셋째는 부인의 말, 넷째는 부인의 일이다(女有四德之譽 一曰婦德 二曰婦容 三曰婦言 四曰婦工也)”라 하였다. 이어서 “부인의 덕은 반드시 재주의 이름이 뛰어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하였고, 또 “부인의 덕은 맑고 곧고 청렴하고 절개가 있어 분수를 지키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행동거지에 염치가 있고, 동정(動靜)에 법도가 있는 것이다”설명한다.

비문에 등장하는 부윤 김시유(金時裕)는 1727년 사양재(四養齋) 강호보(姜浩溥,1690~1778) 「연행록(燕行錄)」에 등장하는 인물로 판단되지만, 단정 짓기는 어렵고, 다만 영조년간 경주부윤을 지낸 김씨는 모두 김시형(金始炯)·김응복(金應福)·김호(金浩)·김성운(金聖運)·김선행(金善行)·김재순(金載順) 등 6명이 전부로, 자료의 정확성과 인물 검색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홍씨일문 양부인 열행비(洪氏一門兩夫人烈行碑)

지난 영조년간(재위.1724~1776)에 문화가 이미 흡족하여 인륜의 법도에 차례가 있었는데, 남양홍씨 홍계발(洪啓發)의 부인 월성김씨(月城金氏)와 나주정씨(羅州丁氏)같은 훌륭한 행실이 있다. 홍계발 공의 선조는 고려 태사(太師) 홍은열(洪殷悅)이고, 이후 관료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이름난 재상들이 대를 이어 나왔다. 조선에 이르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낸 우국재(友菊齋) 홍경손(洪敬孫,1409~1481)이 있고, … 조부는 홍세웅(洪世雄), 부친은 홍수식(洪受湜)이다. 공은 원동(院洞)에 세거하였고, 은거하여 본분을 지키며 살았다. 부인은 김재련(金在鍊)의 따님과 정씨의 따님으로, 그윽하고 정숙하였으며, 대대로 부덕(婦德)이 있었다.

부인의 직분으로 하루는 베를 짜는데, 밤이 이미 깊었다. 남편은 평상에 누웠고, 마침 사나운 호랑이가 포효하며 갑자기 마당 안으로 들어와 남편을 해치고자 하였다. … 즉시 이불로 호랑이를 덮어 날카로운 아가리를 막았다. 한 명은 부엌칼[포도(庖刀)]로 호랑이를 찌르고, 한 명은 절굿공이[도저(搗杵)]로 호랑이를 내리쳤다. 칼날의 빠르기가 새와 같이 빨랐고, 절굿공이를 내려치기가 순식간이었다. 이에 호랑이가 앞에 쓰러지고, 남편을 위기에서 구하였다. 다음날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모여 이들을 칭송하였고, 가죽은 벗겨서 관(官)에 주었다.

부윤 청음(淸隱) 김시유(金時裕)가 시를 지어 “절의를 산처럼 중히 여기고, 자신의 몸은 터럭처럼 가볍게 여기네. 한 손으로 사나운 호랑이를 잡아 천생연분의 남편을 구하였네(節義丘山重 身軀羽毛輕 隻手句猛虎 能得所天生)”라며, 매우 가상히 여겼다. 훗날 사나운 호랑이와 맞닥뜨린 사람으로 정려(旌閭)를 받았다. … 한결같은 정성은 하늘을 감동시켰고, 그 정성이 진실되어 도왔다. 부인 김씨는 홍우룡·홍우무 아들을 두었고, 정씨도 자식이 있었다.

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번창함이 있고, 후손이 떨쳐지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창대해진다. 정려각이 화재로 소실되어 후손 홍종도(洪鍾都)와 주손 홍순호(洪淳昊)가 고쳐 세우고, 기문과 상량문을 걸었다. 하루는 홍종태(洪鍾泰)·홍순칠(洪淳七)·홍영식(洪永植) 등이 나[이채원]를 찾아와 화재로 소실되어 항시 마음에 걸림이 있어, 정려각 아래에 비석을 세워 오래도록 전하고자 하는 뜻을 전하였다. … 새겨 이르기를, 죽음을 기러기 깃털보다 가벼이 여긴 절개는 태산과 같고 한결같은 정성이 하늘에 통하였네
칼 한자루로 큰 호랑이와 저항해 쓰러뜨렸네 이를 비석에 새겨 오래도록 귀감이 되고자 하네
경술년(1910) 11월 여강 이채원(李綵源) 짓고, 함안 조원규(趙元奎) 쓰다.
경주신문 기자  
- Copyrights ⓒ경주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최신이슈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최신뉴스
경주서 연휴 사흘간 확진자 13명 추가 발생..  
경주 희망농원 ‘고병원성 AI’ 최종 확인..  
경주서 교회발 감염 9명 등 11명 추가 확진 ..  
기대하지 않았던 시필이 작품이 되다..  
코로나19 위기 적막강산이지만 이겨내자..  
방치된 경주경마장 부지 보존·활용 기대한다..  
지방자치법 제·개정과 주민참여 경주 기대..  
남산에 눈이 내리면 어떤 음악소리가 울릴까..  
그럼에도… 경주역 광장 크리스마스트리가 전하는 희망의 메..  
경주 의병장 김득복과 김득상의 자취를 찾아서..  
오르페오가 뭐길래?..  
북촌을 거닐며 본 성건동의 내일…!!..  
포석정(3)..  
담뱃값으로 자전거 산 오기택 씨..  
경주공무원공상유공자회, 사랑의 마스크 1만장 기부..  
광고・제휴・기사제보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기자윤리실천요강 기자윤리강령 편집규약
제호: 경주방송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69 (노동동) 2층 / 발행인·편집인 : 이상욱
mail: egbsnews@hanmail.net / Tel: 054-746-0040 / Fax : 054-746-0044 / 청탁방지담당관 이상욱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아00214 / 발행·등록일 : 2012년 04월 09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욱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