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의 대숭복사 비문으로 밝혀진 숭복사지(2)
숭복사지에는 팔부신중상이 새겨진 두 기의 석탑이 있다
하성찬 시민전문 기자 / 1468호 입력 : 2020년 12월 17일(목)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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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이 탑은 발굴조사 중으로 가림막이 설치되어 일반인들이 볼 수 없다. 동탑은 2층 탑신이 서탑은 2층과 3층의 탑신과 3층 옥개석이 없다. 두 탑 모두 상륜부는 유실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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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찬 시민전문기자 | 일제강점기 숭복사지 주변에는 탑재들과 귀부와 비편, 건물의 초석 등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1929년 후지시마 가이지로(藤島 亥治郎)가 서쪽 돌계단 아래서 ‘국사대웅(國寺大雄) 개와대웅(蓋瓦大雄)’이라고 씌여진 평기와를 발견하였다. ‘국사(國寺)’라고 하는 것은 사격이 높았다는 것이고, ‘개와(蓋瓦)’는 지붕을 기와로 덮었다는 의미이며, 대웅(大雄)은 부처님을 지칭하는 말이니 대웅전 지붕의 기와가 아니었을까?
숭복사지는 비교적 넓은 편으로 3단의 석축을 쌓아 맨 위에 법당과 탑을 배치하고 북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 강당을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금당 앞에 두 기의 탑을 배치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이었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94호로 지정된 이 두 탑은 파괴되어 흩어져 있던 탑재를 수습하여 1970년대에 복원하였다. 두 탑의 남은 부재가 서로 같지 않아 서로 다른 탑처럼 보이나 규모나 조각이 거의 같은 양식으로 2층 기단에 3층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동탑은 높이가 4.3m인데 2층 탑신과 상륜부가 없어진 상태이며 서탑은 약 3.2m의 높이로 2,3층 탑신과 3층 옥개석 및 상륜부가 없어 왜소해 보인다.
두 탑은 밑바닥에 지대석을 깔고 그 위에 기단을 올렸는데 하층기단은 하대석과 중대석을 합쳐서 만들었다. 면석에는 양쪽에 우주을, 가운데에 두 개씩의 탱주을 새겼다. 하층갑석은 네 장의 돌로 만들어 합하였는데 지붕면에 경사를 두었고 위에는 호형과 각형의 2단 괴임을 만들었다.
두 탑의 상층기단을 만드는 방식은 같지 않다. 남북으로 면석을 세우고 동서에서 끼우는가 하면 돌려가면서 세우기도 하였고 한 면을 두 개의 판석으로 만든 경우도 있어서 파손되어 복원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일관성은 떨어져 보인다.
두 탑 모두 2층 기단 각 면에 2구씩 8구의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조각되어 있다. 팔부신중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로 명중팔부(冥衆八部), 천룡팔부(天龍八部), 또는 팔부중(八部衆)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고대 인도의 신들로서 악마나 귀신에 속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에게 교화된 후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선신(護法善神)이 되어 10대 제자와 함께 부처의 설법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영산회상도 등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고 벽화나 조각으로도 많이 조성되기도 하였으며 특히 석탑의 기단에 부조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팔부신중은 사천왕에 버금가는 수호신으로 부처의 팔부중과 사천왕의 팔부중이 따로 있다. 사천왕이 거느리는 부하인 팔부중은 건달바·비사사·굼반다·벽려다(프레타)·용·부난다·야차·나찰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으로는 천·용·야차·아수라·건달바·긴나라·가루라·마후라가가 있다.
숭복사지 석탑 동쪽에는 용·야차, 서쪽은 천·가루라, 남쪽은 아수라·건달바. 북쪽은 마후라가·긴나라가 조각되어 있다. 이 탑 팔부신중의 조각 수법은 경주 서남산의 창림사지 석탑과 유사하다.
탑신부는 탑신, 옥개석 모두 1매로 되어 있다. 탑신에는 우주를 새기고, 초층 탑신에는 4면에 문비(門扉)가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 층급받침은 모두 4단인데 모서리에 풍탁(風鐸)을 달았던 구멍이 있다.
지금 두 탑은 보수 정비 중으로 철제 울타리에 갇혀 있다. 아니 탑이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그 속으로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편 저 산 위에 풍력발전기라는 거대한 바람개비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세차게 부는 바람에도 꿈적하지 않고 있다. 또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국도에서 내달리는 차량이 시야를 어지럽히고 있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이 보기 싫어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그 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새로운 석재를 첨가하여 수리 복원한 탑을 보면 낡은 옷을 새 천으로 기운 것처럼 영 어울리지 않았었다. 비록 몸의 일부를 잃었지만 상상의 나래를 편다면 건립 당시의 당당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추정해 볼 수 있다.
묵묵히 천년을 견뎌온 탑이 대견스럽다. 철제 울타리를 허물고 떳떳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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