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모
백무산
아이들 머리통만 한 배 하나 받아든다 어디서 달려왔는지 불룩한 배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열매가 달려온 곳을 떠올려본다 터무니없을 만큼 큰 열매를 매달았을 나무를 간신히 떠올려본다 열매가 달려있던 자리를
바람에 몸을 흔들어보지도 못하는 나무 햇살에 머리를 풀어헤쳐보지도 못하는 나무 쇠파이프에 묶이고 쇠줄에 감긴 나무
자기 몸을 자기가 가질 수 없는 나무 열매의 무게에 찢어지는 팔을 가진 나무 겨울 언 땅에 발등이 터져 있을 나무
생식기만 있는 나무 나무를 기억하지 못하는 열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직 접시 위에 놓이기만을 위해 달려온 길 칼을 들다 나는 몇 번이고 망설인다
-‘멈추라’고 외치는 마음의 소리
 |
 |
|
↑↑ 손진은 시인 | 시인은 방금 배달되어 온 ‘아이들 머리통 만 한 배’ 하나를 받아들고 칼을 들어 깎아먹을지 말지 머뭇거린다. 그리고는 떠올려본다. “쇠파이프에 묶이고 쇠줄에 감”기고, “열매의 무게에” 찢어진 팔을 가진 나무를. 바람에 몸을 흔들어 보지도, 햇살에 머리를 풀어보지도 못한, 자기 몸을 자기가 가지지 못한 어미를. 그렇구나. 그 나무는 햇살과 비에 가지를 통통거리면서 자기가 낳은 새끼, 열매들을 돌보는 그런 자유마저 빼앗긴 과목이었구나. 그래서 열매와 나무는 서로를 고마워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구나. 그 나무는 “터무니없을 만큼 큰” 새끼를 낳아주는, “생식기만 있는” 대리모였구나. 우리는 그런 과일들을 일등품이라고 접시에 올리는구나.
시인은 나무와 열매마저 대기와 우주와 함께 호흡할 수 없는 시대, 식탁에 놓이는 과일마저 그 근원이 의심스러운 시대를, 식탁에 놓인 과일을 통해 진단하는 게 아닐까? 이 점에서 시인의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의 힘」)는 전언은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멈추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려왔는가? 시인의 말대로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대기도 바닷물도 미세 플라스틱으로 가득 차 있어 인간과 지상 및 바다 생물들이 숨을 쉴 때마다 그 작은 것들이 폐에 빨려 들어 내장에 쌓인다고 한다. 이 시간에도 빙하는 녹아내리고, 한파는 몰아치고, 해일과 홍수는 늘어만 간다. 자세히 보면 ‘Covid-19’도 이런 자연파괴에서 유래하지는 않았을까? 어찌하여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가? “칼을 들다 나는 몇 번이고 망설인다”는 시인처럼 우리도 이쯤에서 우리 행동을 머뭇거리며 회의할 순 없을까? 그 머뭇거림이 멈춤으로 가는 새로운 길이 될 수 있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