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와 아인슈타인
경주신문 기자 / 1468호 입력 : 2020년 12월 17일(목)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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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 아들 녀석이 방 붙박이장을 자꾸 열어두길래 이러면 여기로 귀신이 나온다고 했더니, 무섭다고 그러지 말라고 내 목을 조른다. 힘을 얼마나 주던지 녀석은 정말 무서웠나 보다. 얼얼한 목을 주무르며 생각했다.
‘나는 니가 더 무섭다’
세상 어떤 사람의 뇌도 100% 동일하지 않다. 일란성쌍둥이도 예외가 아니다. 뇌 속 회로망은 사람마다 다르니 바라보는 세상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개구리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은 것으로 구별한다. 날아다니는 파리를 그래서 잘 잡아먹는다. 박쥐는 초음파로 인식하고, 돼지는 세상을 흑백으로 인식한다.
그럼 아들은 왜 한 번도 보지 못한 귀신을 무서워할까? 뇌 안의 내용물이 다르다는 말은 달리 말해 녀석의 귀신과 나의 귀신이 다르다는 말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언어를 매개로 소통한다. 비언어적 요소도 있지만 단어, 개념, 그리고 문장으로 상황을 묘사하고 전하고 또 공유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방이 사용하는 개념이 타방의 그것과 상이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낙산사는 화재가 난 이후 방문한 아들의 낙산사와 다르듯이 말이다. 하나의 개념에도 서로 다른 세상이 있음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불교에서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표현이 있다. 물(H2O)을 물고기는 집으로, 사람은 물로, 아귀는 고름으로, 천상에서는 금은보화로 인식한다는 내용이다.
삼다수 회장이라면 곳곳에 보이는 자기네 생수가 다 돈으로 보이겠고 말이다. 물 하나만 놓고 봐도 이 정도라면 우리는 지구라는 동일 공간에서 너무나 다른 세상을 각자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약주를 거하게 하신 어른들이 서로 자기 이야기 좀 들어보라 고함을 지르고, 카페에서 젊은 커플들이 서로를 보고 내 마음도 몰라준다고 눈을 흘기는 게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라이프니츠는 인간을 정의하기를 ‘나’란 자아들에 갇혀버린,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라고 했다.
관점이 달라지면 인식내용도 달라진다. 관점은 소위 보고 생각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먹어본 이상야릇한 음식과 불편한 잠자리를 왜 우린 너그럽게 받아들일까? 당연히 거기는 외국이니까, 집이 아니니까 그런 거다. 여행에서 불가피한 불편도 생각을 바꾸면 로맨틱한 추억이 되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영역인 예술도 사실은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아주 낯설게 해석해서 전혀 새로운 느낌을 선사하는 작업 아니던가. 우리가 잘 아는 다빈치가 그랬고 피카소가 그랬다.
미국 근대 5종 국가대표 마릴린 킹(Marilyn King) 선수는 모스크바 올림픽을 딱 1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머리와 척추를 다쳐서 전혀 움직일 수가 없게 되자 마릴린 선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자신이 훈련하고 경기하는 모습을 하루 종일 상상했던 것이다. 남들은 그저 누워있다고 생각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던 그녀는 그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훈련이었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진작에 포기를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그녀는 올림픽 경기에 뛰고 있는 자신을 상상했고 끊임없이 다른 선수들과의 시합을 상상했다. 몇 달 뒤 그녀는 정말이지 기적처럼 올림픽에 출전했고 기적처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마음으로 상상한 것만으로도 세상이 바뀐 셈이다.
흔히 반에서 꼴찌를 한 친구를 보고 ‘뒤에서 일등’이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어쨌든 일등은 일등이니까. 독일에서도 이런 학습 부진아를 ‘츠바이슈타인’이라고 부른단다.
독일말로 츠바이(zwei)가 둘을 뜻하니까, 츠바이슈타인’은 바로 ‘제2의 아인슈타인‘이라는 재미난 표현이다. 지금 당장은 뒤에서 일등이지만 이 사실을 뒤집는, 그의 촉망된 미래를 부각한 표현이다.
가장 짧은 시로 알려진 일본의 하이쿠[俳句] 중에 ‘나의 집에서 대접할 만한 것은 모기가 작다는 것’이란 노래가 있다. 자랑인지 겸손인지 아니면 맥(?)이는 건지 감은 잘 안 오지만, 관점을 바꾸면 세상도 그렇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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